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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인의 生에 알알이 스민 참 신앙

입력 | 2007-10-11 03:03:00

김수환 추기경(왼쪽)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는 배동순 할아버지(오른쪽).


‘명동성당 베드로’ 배동순 할아버지 선종

“내가 세상에서 만난 예수가 두 분이 계신데 그중 한 분이 베드로 할아버지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살아 있는 예수’라고 고백했던 충북 음성 꽃동네 배동순 할아버지가 8일 오후 8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1926년 충북 제천에서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출생 7일 만에 경기를 일으켜 일생을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으로 살았던 고인은 가난과 질병의 극한적인 삶 속에서 걸인 생활을 하면서도 서울 명동성당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해 모든 것을 내놓는 ‘참신앙인’으로 살았다. 그는 40여 년 전 명동성당에서 걸인의 옷차림으로 미사 영성체에 참여하려다 신자들이 저지하자 한 달 넘게 ‘영성체 참여투쟁’을 벌인 일로도 유명하다. 그의 영적인 깊이와 신앙에의 의지를 확인한 성당 측은 성당 한 쪽에 조그만 거처를 내 줬고 1984년 음성 꽃동네로 이전하기까지 28년간 그곳에서 살았다.

꽃동네에서는 목이 상해 말을 잘 할 수 없는 상태였음에도 14년에 걸쳐 자신의 기구한 일생을 담은 333쪽짜리 자서전을 만들었을 정도로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였다.

그는 명동성당에 있을 때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참 신앙인의 자세’를 가르쳐 수십 명의 ‘영적 자녀’를 두었다. 동냥하여 모은 돈을 성당 보수공사에 봉헌하는가 하면 가출한 청소년들을 상담했던 고인은 세상을 뜨면서도 앞 못 보는 사람들을 위해 안구를 기증했고, 시신은 연구용으로 내놓았다.

그는 꽃동네에서 “내 자신의 장애로 받는 고통도 큰 은총입니다. 그만큼 하나님 앞에 더 깨끗하게 갈 수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또 자서전에서 그는 “육체는 영혼의 지배를 받고 영혼을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가끔씩 착각한다. 살아서 풍요로움을 느끼는 것이 행복인 줄 알고 있는 것이다”는 말도 남겼다.

그의 장례식은 10일 꽃동네에서 치러졌으며 고인의 영적 자녀들을 포함해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