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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2년 2차 바티칸공의회 개최

입력 | 2007-10-11 03:03:00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형제로 대하기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감히 모든 사람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온갖 차별과, 혈통이나 피부색이나 사회적 조건이나 종교적 차별의 이유로 생겨난 모든 박해를,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나는 것으로 알고 배격하는 바이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채택된 ‘비그리스도교에 대한 선언’ 중)

당시 교황 요한 23세는 1962년 10월 11일 ‘아조르나멘토(쇄신)’의 기치 아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했다. 3년 동안 이어진 이 공의회는 가톨릭의 면모를 혁명적으로 일신했다는 평을 듣는다.

중세에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행했던 천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기독교 근본주의 시대를 마감했다. 천주교는 공의회에서 근본주의와 다원주의의 절충인 포괄주의를 채택했다. 타 종교에도 진리와 구원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종교 간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이다.

공의회는 네 개의 헌장, 아홉 개의 교령, 세 개의 선언을 채택했다. 이 같은 방대한 문헌의 바탕은 ‘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신이었다.

이 공의회는 가톨릭교회를 크게 바꿨다. 우선 평신도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평신도가 교회의 사명에서 고유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시해 교회의 한 지체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라틴어로만 드릴 수 있던 미사를 현지어로 드릴 수 있게 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때문에 미사의 형식만 따르던 신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미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는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도 허용됐다. 개신교와는 달리 가톨릭이 포용의 종교로 인식되게 된 계기였다.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차 공의회의 정신을 가장 충실히 받든 교황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재임 기간 중 그리스와 러시아 정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가톨릭과 알력이 있던 종교와 화해하고 협력했다.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7월 ‘가톨릭 이외의 다른 교파는 참교회가 아니다’라는 문건을 발표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가톨릭이 보수 성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교황의 진의가 어떻든 종교 간의 대화만큼은 중단돼선 안 될 것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