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쓱쓱 그은 몇 개의 선, 편안하면서도 순진무구한 하나의 얼굴이 되었고 거기 노(老) 종교인의 내면의 순수가 풍겨난다. 김수환(85) 추기경이 최근 유성 파스텔로 그린 드로잉 자화상 ‘바보야’의 모습이다.
김 추기경이 그림을 전시한다. 18∼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본전시실에서 열리는 ‘동성중고 개교 100주년 기념전-현대미술 오늘과 내일’에 출품하는 것이다. 드로잉과 판화 20여 점을 선보일 예정.
동성중고의 전신인 동성상업학교를 졸업한 김 추기경이 그림을 그린 건 올해 5월. 기념전 준비위원장인 한진만 홍익대 교수 등 동성고 후배 미술인들의 부탁을 받고 한 달여간 짬짬이 시간을 내 작품을 완성했다.
한 교수는 “모든 동성인이 존경하는 추기경께서 그림을 그리신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사람의 영혼을 맑게 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받아주셨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의 그림은 순수한 동심의 세계다. 어린 시절의 얼굴을 그린 ‘자화상’, 옛 고향을 떠올리면서 그린 ‘옛 집’, 기차 타고 여행할 때의 설렘을 뒤돌아본 ‘기차’ 그리고 산과 새 그림 등 그의 작품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필치와 담백한 내면세계가 돋보인다.
기념전 준비위는 김 추기경이 쓴 글씨를 판화로 제작했고 한 교수는 그림을 그리는 추기경 등을 수묵(水墨)으로 그려 함께 전시한다. 02-399-1161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