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와 일본의 도요타에서 배운 것이 성과를 거뒀습니다.”
올해 3분기(7∼9월) ‘깜짝 실적’을 낸 LG필립스LCD의 권영수 사장은 성공의 비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LG필립스LCD는 두 회사의 원가 절감, 생산기술을 벤치마킹한 결과 직전 분기 대비 362%에 이르는 높은 영업이익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회사가 벤치마킹에 나선 것은 2006년 이후 차세대 생산라인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서 삼성전자에 뒤처지면서 생산성 향상으로 회사의 경영전략 방향을 수정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 일류기업 성공 사례가 경영 교과서
경영전문가들은 벤치마킹 대상으로 어떤 기업을 택하느냐가 기업의 갈 길을 보여 주는 전략적 지도의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벤치마킹 대상 기업은 일종의 ‘혁신 교과서’라는 것이다.
매출액 10조 원 돌파 후 정체 현상을 겪고 있는 SK텔레콤은 최근 미국 제록스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제록스는 전자종이 등 다양한 분야의 10여 개 자회사를 분사시켜, 이를 통한 수익이 본사보다 많아지는 성공 사례를 만든 것으로 잘 알려진 회사.
매출액 20조 원대 달성을 위해 이동통신을 중심으로 △인터넷(싸이월드) △콘텐츠(음악, 게임) △위성방송(TU미디어) 등의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야 하는 SK텔레콤으로선 ‘맞춤형’ 경영 교과서나 다름없다.
올해 반도체 부문의 부진 속에 위기감이 커진 삼성전자는 구글, IBM, 혼다를 주목하고 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이들 회사를 배워야 한다”며 이른바 창조경영을 강조했다. 회사 측은 최근 신재생에너지 등 지금까지와는 아예 다른 신사업까지 넘보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LG전자의 남용 부회장은 △생산 △제품 개발 △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회사인 도요타, 3M, P&G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
이 밖에 동국제강은 사업 확대를 위해 아르셀로미탈의 M&A 사례를 벤치마킹했고, 동부그룹은 시스템 경영 도입을 위해 삼성그룹을 주목하는 등 기업의 전략에 따라 다양한 성과를 낸 초일류 기업이 ‘경영 교과서’로 선택되고 있다.
○ 가장 효과적인 혁신 방법이지만 단순 답습은 무의미
잭 웰치 전 GE 회장은 “더 좋은 아이디어를 표절하라. 그것은 합법적인 표절”이라고 말하며 벤치마킹을 독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생산 혁신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도요타의 경우 벤치마킹을 원하는 기업을 상대하는 별도의 회사까지 둘 정도로 벤치마킹은 기업들의 효과적인 경영전략으로 대중화됐다.
하지만 구체적인 전략을 배제한 맹목적인 답습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많다.
LG경제연구원은 ‘벤치마킹이 실패하는 13가지 이유’를 주제로 한 보고서에서 “하드웨어적 요소만 이식하고 운영 차원의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창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벤치마킹의 의미는 국내 기업의 경영 능력이 떨어졌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며 “자기 회사의 전략에 맞는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