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는 관객들이 영화를 처음 접하는 매체 중 하나다. 그리고 하나의 완성작이 태어나기까지 주옥같은 B컷들이 버려지고 또 버려진다. 바로 심의라는 ‘가혹한’ 잣대 때문.
영화는 나이 대에 따른 관람 등급을 표시해 표현 수위를 조절할 수 있지만 포스터나 예고편 등의 홍보물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기에 전체 관람가를 지향한다. 하지만 평범만으론 자극적이고 성미 급한 요즘 ‘패스트푸드 시대’의 입맛을 사로잡기가 만만치 않을 터. 영화를 알리는 입장에서는 보다 강렬한 ‘무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단숨에 빼앗는 법을 찾고자 매일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결국 우리가 지금 보는 포스터는 ‘무자극’의 심의회와 ‘찰나성’의 제작자 사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끝에 찾아진 타협점. 또한 장르의 특성상 공포영화는 잔인함을 부각시키다, 섹시코드 영화의 경우 선정성을 강조하다 퇴짜 맞는 일이 부지기수다.
●잘려진 목에서 피가 줄줄 No!
11월8일 개봉을 앞둔 코믹 잔혹극 ‘세브란스’는 제 1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작으로 잘린 목 단면을 가리고 손에 든 칼을 드릴로 바꾸어서야 간신히 심의에 통과했다.
‘세브란스’의 오리지널 포스터는 얼굴이 목에서 뎅강 베어진데다 피가 분수처럼 샘솟는 사람의 몸통이 정면에 배치돼 수입사에서 스스로 자체 정화 작업을 실시했다. 그러나 총은 되도 톱이나 칼은 안 된다는 심의 기준에 불합격해 5번의 수정 끝에 비로소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얼마 전 개봉한 국내 호러 ‘두 사람이다’도 8전9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포스터와 예고편, 지하철 광고와 온라인 광고까지 모두 심의 반려돼 홍보사 직원들의 애간장을 끓게 만들었다고. 여성의 반라 사진을 게재한 ‘해부학 교실’은 가슴 노출 정도와 배에 난 메스 자국 때문에 거듭 재심의를 거쳤다.
슬래셔 무비의 대표 격인 ‘쏘우’시리즈는 오리지널 포스터 또한 끔찍한 ‘사지 절단’의 순간이 담겨 있어 아예 국내용을 따로 제작했다.
●은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No!
11월 개봉 예정인 코믹에로 ‘색화동’은 새빨갛고 요염한 입술이 형형색색 사탕을 빨고 있는 비주얼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포스터가 반려됐다. 보이는 그림 자체만으로 은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는 게 주 요지.
히로인 이미연 이태란의 베드신으로 주목 받은 ‘어깨너머의 연인’은 발칙한 줄거리만큼이나 “그거…, 할까? 말까?” 라는 과감한 카피가 3차례 지적당해 지금의 버전으로 재탄생했다.
하정우 주연의 ‘두 번째 사랑’도 극중 대사를 그대로 옮긴 “돈을 주고 하는 건 내가 처음인가요?”가 묘한 상상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반려됐고 D.H. 로렌스의 고전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스크린에 옮긴 ‘레이디 채털리’는 ‘만지고 싶은 사랑’이라는 문구가 여주인공의 표정과 겹쳐 야릇하다며 무난하게 ‘…사랑하고 싶다’로 교체됐다.
개봉이 코앞에 닥친 영화사 입장에서는 계속되는 심의 반려에 속이 바싹 탈 노릇. 하지만 이 같은 ‘악재’는 또 다시 ‘얼마나 XX하길래’라는 홍보 수단으로 재활용 돼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호재’로 빛을 보기도 한다.
스포츠동아 이지영 기자 garum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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