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에서부터 성벽 옆길을 따라 서문까지 가는 동안 왼쪽으로 멀리 아파트들의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전경이다.
구름 없이 맑은 날이라 북한산 능선이 선명하게 보였고 서쪽으로는 남산타워와 여의도 63빌딩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더 밑으로는 ‘강남’을 거쳐 분당, 그 옆으로 성남시내가 보인다. 마치 서울과 남쪽 수도권의 입체 지도를 눈앞에 펴 놓은 듯 신기하다. 왜 이곳이 한반도 역사에서 전략적 요충지였는지 알 듯했다.
서울 동남쪽 24km 떨어진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의 남한산성(南漢山城).
먼 과거의 사건들을 돌이켜 보게 만드는 곳. 그것이 역사적인 장소들이 가진 힘이다.
현재 길이 9.5km에 이르는 성벽은 최고 높이 7.3m에 이르는 벽돌로 쌓은 견고한 성벽이지만 삼국시대에는 흙으로 쌓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 시대 이곳에선 신라와 백제 사이에 자주 전선이 형성됐다.
조선시대에는 외세의 침입을 막아 내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다. 말 그대로 외적과 싸우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곳이다. 수도권에는 동서남북 한 곳씩 4곳이 있는데 동쪽의 남한산성, 서쪽의 강화성, 남쪽의 수원화성, 북쪽의 북한산성이다.
남한산성의 벽돌 벽은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가 1624년에 시작해 2년에 걸쳐 쌓았다. 하지만 인조는 1636년 청나라가 일으킨 병자호란에 휘말렸고 결국 자신이 쌓은 남한산성의 서문에서 청나라 군대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으니 기구한 운명이다.
성벽 안쪽은 넓은 구릉지로 현재는 행궁, 침괘정 같은 역사적인 건물이 남아 있고 대형 주차장과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가벼운 등산이나 트레킹 코스로는 남한산성 성벽을 따라 도는 코스만 한 것이 없다.
촬영:서중석 기자
‘벽 따라 걷는 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문에서 시작한다면 서문을 거쳐 북문까지 1시간가량 걷는 동안은 벽 밖으로 멀리 보이는 서울의 모습을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벽 안쪽으론 소나무들이 빽빽한 넓은 노송지대다.
북문부터는 벽 밖의 배경이 도시 대신 푸른 산으로 바뀐다. 자연 안에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등산로의 경사는 내리막이 있는가 하면 평평한 길도 있고 꽤 가파른 오르막도 있어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동쪽 망월사 뒤쪽 길을 택한 코스를 잡으면 다시 출발지점인 남문까지 돌아오는 거리가 약 8km로 조금 빠른 걸음으로 3시간쯤 걸린다. 하지만 중간에 가로지르는 길이 많기 때문에 코스가 다양하다.
남한산성은 서울 강남에서 차로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등 접근성이 좋아 주말엔 상당히 붐빌 줄 알았는데 지역이 넓어서 그런지 토요일 오전에도 그리 붐빈다는 느낌은 없었다.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도 볼 수 있어 야간산행 코스로도 인기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