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로는 숫자 읽기가 아주 까다롭다. 예컨대, 70은 ‘60+10’, 91은 ‘4×20+11’로 나타내는 식이다. 일본어는 또 어떤가. 일본인들은 자기네들 이름도 잘 못 읽는다. 똑같은 한자라도 다르게 소리 나는 까닭이다. 이상하다는 점에서는 영어도 한가락 한다. ‘five’는 ‘파이브’로 읽지만, ‘fist’는 ‘파이스트’가 아닌 ‘피스트’로 읽는다.
조목조목 따져 보면, 어느 나라 말이건 불합리한 구석투성이다. 하지만 정작 그 나라 말을 쓰는 사람들은 별 불편을 못 느낀다. 오류도 일상이 되면 자연스럽다. 모국어는 생활에 공기처럼 젖어있기에, 희한한 어법도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국제어로 쓰일 때는 다르다. 문화 배경이 다르면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한 나라 말이 국제 언어로 쓰이게 되면 문법이 간단해진다. 시장 상인들은 지극히 간단한 피진(Pigin) 영어를 쓴다. 기독교 신약 성경을 적은 그리스어도 아주 쉽고 단순하다. 당시에 그리스어는 일상에서 쓰이던 국제어였다.
반면, 쓰는 사람이 적을수록 언어는 어렵고 복잡해진다. 폴리네시아에서는 섬 하나에서만 수십 개 언어가 쓰인다. 1000명도 안 되는 부족이 자기들끼리만 쓰는 말이니, 누구를 새롭게 이해시킬 필요가 없다. 그래서 원주민들의 말은 외지인이 배우기 어렵다.
한국어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이다.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도 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말도 외래어로 넘쳐난다. 학자들은 외국어로 ‘오염되는’ 우리말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하지만 우리말에 넘치는 외래어를 ‘우리말의 국제화’로 볼 수는 없을까? 일본인들은 외국어를 자기 말로 빨아들여 버린다. 커피는 일본에서 ‘고히’가 되고, 디지털 카메라는 ‘데지카메’가 되었다. 그럼에도 일본어가 ‘오염’됐다며 탄식하는 사람은 없다. 영어도 그렇다. 어느 나라 용어건 미국에서 쓰이면 다 ‘영어 단어’가 되어 버린다.
한글은 표현 못하는 낱말이 없을 만큼 과학적이다. 그래서 한글을 ‘수출’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우리말 수출’도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말은 생각을 담는 도구다. 열린 언어는 열린 생각을 낳는다. 한자어는 우리말에 풍부한 어휘를 주었다. 국제화 시대, 쏟아지는 외래어들도 우리말을 살찌울 거름이 아닐까?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