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북한 전문가는 5년 이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체제에 변화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경우 김 위원장의 분할통치술에 따라 형성된 여러 권력 분파의 갈등과 경쟁으로 격심한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 연방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해군분석센터(CNA) 코퍼레이션의 켄 고스 해외지도자연구팀 팀장은 14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김 위원장의 행태를 분석하면서 북한 권력체제의 급변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미 행정부를 포함해 중국 러시아 등의 전문가들과 정보를 나누지만 자신의 의견이 정부 차원의 공식 견해는 아니라고 밝혔다.
―2000년 정상회담과 비교해 김 위원장에게서 주목된 점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관측가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김 위원장이 5년 이상 권좌에 있지 못하거나 살아 있다고 해도 지배력이 현저히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그러면 권력 역학관계가 매우 혼돈스러워지면서 남북관계에 결정적인 시기가 올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 급변사태에 면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주된 관심은 아무래도 중동지역이기 때문에 결국은 한국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체제 장악력은 여전히 강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주변에는 서로 잠재적으로 경쟁하고 적대시하는 다양한 권력 분파가 형성돼 있다. 그들은 각자 무기와 군대에 대한 접근권을 갖고 있으며 거미줄 같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군부 내에는 잠재적인 군벌들이 형성돼 경쟁하고 있다. 과거 빨치산 세대의 동료, 부하, 자식들의 각종 인맥이 파벌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정상회담이 김 위원장의 북한 내 권력 역학관계에 영향을 미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최종적 결정권자이지만 결정을 내릴 때 여러 권력 분파를 민감하게 고려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 병력 철수 문제를 제기했을 때 김 위원장이 이를 즉각 거부한 것은 군부와 사전에 협의하고 동의를 받았음을 추정케 해 준다.”
―한국 대통령을 맞이하는 김 위원장의 태도가 2000년 정상회담에 비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가 덜 열정적인 태도를 보인 이유 중 하나는 건강일 테고, 둘째는 이번 회담에서 얻어내기를 희망한 게 2000년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은 다양한 이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알리는 기회로 삼되 확고한 약속을 할 의향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노 대통령이 도착한 첫날과 둘째 날의 김 위원장 태도가 달랐는데….
“일거수일투족을 과잉 해석할 필요는 없다. 건강상 이유로 감정의 기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다가오는데 그냥 서서 기다리고 표정도 밝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의도적인 태도였을 가능성이 크다. 즉 북한이 쉽게 다룰 수 있는 상대가 아니며, 결코 아쉬운 쪽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회담 후 ‘김 위원장은 과연 진짜 권력자답다’고 표현했다. 동의하나.
“김 위원장은 내부 권력통제 차원에서 빈틈없는(shrewd) 권력자라고 본다. 부도덕하고 비열한 시스템이지만 이를 통제하고 잠재적 위협 요인들을 경쟁하게 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해 가는 법을 안다. 그런 차원에서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몰라도 그가 평균적 시민들을 위해 정책 결정을 하는, 그런 의미의 권력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