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언론 ‘2000년 대선 라이벌’ 뒤바뀐 처지 비교
‘노벨상 날개 달고 백악관까지 착륙할까.’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2000년 대선에서 그를 누르고 당선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쟁의 수렁에 빠져 지지율이 바닥에서 맴돌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고어 전 부통령이 내년 대선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계속 나온다.
미 언론들은 13일 ‘뜨는 고어’와 ‘지는 부시’로 비교했다.
환경 분야에서만 보면 한 사람은 지구온난화 방지에 앞장선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반면 한 사람은 반환경적 정책으로 오점을 남겼다는 것.
워싱턴포스트는 “고어 전 부통령이 20년 전부터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경고하는 등 환경운동에 꾸준히 앞장서 왔다”며 “노벨 평화상은 이런 노력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평가했다.
반면 부시 대통령은 고어 전 부통령이 주도한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하는 등 기후변화 문제를 무시했다며 “고어 전 부통령의 노벨상 수상은 인기 없는 대통령에게 또 한 번의 좌절을 안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도 13일 사설에서 “그 일(환경문제)은 고어 전 부통령처럼 유명인사가 나섰다 해도 시민 한 사람이 감당할 몫이 아니었다”면서 “정부의 업무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시 행정부의 환경 정책에 대해서는 “끔찍하게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조너선 타이 씨는 “고어 전 부통령의 승리는 부시 대통령의 불명예를 알려주는 척도”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한껏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고어 전 부통령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그는 연간 최대 2억 달러가 소요되는 대대적인 기후변화 광고 캠페인에 나서는 등 공세적인 환경운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CNN이 전했다.
또 환경문제가 미 대선의 주요 이슈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그가 퇴임 후 7년 동안 15kg 정도 불어난 몸무게만 줄인다면 대통령 출마에 걸림돌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그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은 “그의 활동이 현대문명에 관해 의문을 제기했는지 모르지만 평화에 무슨 공헌을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과학자 출신으로 프랑스 교육장관을 지낸 클로드 알레그르 씨도 “노벨 평화상이 정치가 되고 있다”며 “고어 전 부통령에게 상을 준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에 대한 개입”이라고 말했다.
한편 고어 전 부통령은 노벨 평화상 발표 후 차기 대선 출마에 대한 (기존의 불출마) 결심에 변화가 있는지 묻는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