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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880년 인디언 지도자 빅토리오 사망

입력 | 2007-10-15 03:01:00


1877년 미국 남부의 샌카를로스로 쫓겨 간 아파치족(族)의 추장 빅토리오의 소원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우리가 태어난 곳에서 살게 해 주시오. 나와 내 부족은 지속적인 평화를 원하오. 나는 손과 입을 차가운 샘물로 씻었소. 내가 말한 것은 진실이오.”

하지만 백인들은 말 도둑과 살인자라는 케케묵은 죄목을 들이대며 다시 빅토리오를 체포하려 했다. 가까스로 탈출한 그는 백인들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는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온 이래로 멕시코에서 그랬던 것처럼 백인들에 대항해 싸우지 않는 한 모든 아파치족은 멸망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미국에 대한 영원한 전쟁을 선포하고 멕시코에 요새를 정한 뒤 전사들을 불러 모았다. 200여 명의 전사는 뉴멕시코와 텍사스까지 과감히 쳐들어갔다. 그의 목에는 3000달러의 현상금까지 붙었다. 드디어 미군과 멕시코군은 빅토리오를 잡기 위해 대규모 토벌 작전을 개시했다.

1880년 10월 15일, 빅토리오는 멕시코 북부에 있는 카스티요 언덕에서 멕시코군을 맞아 싸우다 최후를 맞았다. 당시 살아남은 아파치 전사는 30여 명에 불과했다.

빅토리오가 사망한 뒤에도 간헐적인 전투는 있었지만 1886년 아파치족은 끝내 미국과 강화를 맺고 불모지나 다름없는 인디언보호구역에 유폐됨으로써 300여 년간의 저항에 종지부를 찍었다.

“땅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빅토리오의 우려는 정확했다. 그가 백인과 힘겨운 전쟁을 치를 때에도 일부 인디언 지파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안위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미군과 타협했고, 자진해서 땅까지 내줬다.

오늘날 미국 내 561개 인디언보호구역에는 150여만 명의 인디언이 살고 있다. 카지노 운영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는 인디언도 있지만 대부분은 저소득과 높은 실업률, 마약 등으로 밑바닥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시로 나온 인디언들은 다른 인종과 섞이면서 존재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지도자 개인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위해 영토를 희생하려는 사례는 단지 인디언들의 참혹한 과거사만은 아닐 것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