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가 세간에 '평화' 대신 '논란'을 불러오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특히 이념적 좌표가 뚜렷한 정치인이 수상자로 선정될 경우 더욱 그렇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데 대해서도 이미 노골적인 비판이 나오고 있다.
"버마와 이라크에선 수많은 용감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러시아에선 언론인들이 살해되고 있는데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고어가 8년동안 부통령을 하면서 교토의정서를 실행했나?"(네오콘 기관지로 불리는 미국 주간 위클리스탠다드의 윌리엄 크리스톨 발행인)
일부에선 "테네시주 내쉬빌에 있는 고어 전 부통령 저택의 지난해 전기사용량이 미국 가정 평균의 20배인 22만Kw였으며 연간 전기료 및 난방비가 3만 달러(약 2850만원)에 달했다"는 등의 숫자를 거론하며 언행불일치를 지적하는 논평도 나온다.
더욱 진지하게는 평화상이 지향하는 '평화'가 무엇인지를 둘러싼 논쟁도 전개된다. 반전(反戰), 평화 중재, 고통 받는 이웃에의 봉사 등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개념의 '평화'가 아니라 (환경문제 같은) 특정 개념의 지향성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인류가 직면한 위협이 20세기와는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편 미국 공영방송 NPR은 역대 수상자 가운데 평판이 급락하거나 불행한 일을 당한 경우가 많다며 "평화상 수상자 그룹은 영광스런 엘리트 클럽이지만 일부에선 저주받은 클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1990년 수상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수상의 기쁨이 식기도 전에 소련이 해체돼 자신이 부순 낡은 체제의 잔재 속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2001년 수상 직후 '이라크 석유-식량 프로그램 부패 스캔들'이 터져 평판이 급락했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북한과의 화해를 촉진해 상을 받았으나 그후 남북 화해 작업은 주춤해졌다고 NPR은 평했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1978년 수상)과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1994년 수상)은 수상 이듬해 암살됐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