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기자는 국무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 할런 클리블랜드 국무부 차관보와 마주쳤다. 그는 유독 라틴아메리카국 사무실에만 불이 켜져 있는 점을 주목하고 과감하게 넘겨짚었다.
“지난번(피그 만 사건)과 비슷한 상황인가요? 쿠바 문제로 골치 아프죠?”
차관보가 걸려들었다.
“그런 것 같아요.”
워싱턴포스트는 이튿날 ‘쿠바 미사일 위기’와 관련한 특종 기사를 보도했다.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던 미사일 위기는 이보다 닷새 전인 10월 16일 시작됐다. 미 정찰기가 쿠바에 건설 중인 소련의 미사일 기지를 공중 촬영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다.
미국과 치열한 군비경쟁을 벌이던 소련은 그해 7월 미국의 코앞인 쿠바에 핵탄두를 장착한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1961년 미국이 터키에서 모스크바까지 16분이면 날아갈 수 있는 핵미사일을 배치한 데 따른 맞대응이었다.
첫 보도가 나간 다음 날인 22일 케네디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쿠바를 해상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소련이 쿠바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쿠바를 공격할 것이라는 위협도 잊지 않았다.
결국 케네디와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제1서기는 막후교섭 끝에 위기 발발 13일 만인 28일 ‘소련은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고,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후 미소 양국은 위험한 대결보다는 공존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양국 간 핫라인을 설치하고 1963년에는 부분적핵실험금지조약(PTBT)을 체결했다.
핵전쟁의 위기를 막아낸 것은 케네디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미국 측의 요구로 공식 발표에서 미국이 터키에 배치한 미사일을 철수한다는 내용이 빠지는 바람에 흐루쇼프 공산당 제1서기는 국내에서 정치적 위기를 맞아 2년 만에 물러났다. 그 대신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입지는 강화돼 사회주의 쿠바를 오랜 기간 통치할 수 있었다.
북한 핵 위기를 맞아 전문가들은 40여 년 전 카리브 해의 위기에서 해답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옛 소련은 핵을 가지고도 망했고 핵이 없는 쿠바는 여전히 건재하다”며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