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동원-신건 前원장 항소심 파행
국정원 “자체 직원법 따라 증언 허가 않겠다” 검찰에 공문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을 묵인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임동원, 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의 항소심 공판을 둘러싸고 검찰과 국정원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이 이 재판 1심 때와는 달리 법정 증언을 거부하면서 재판의 심리가 2개월 이상 지연되자 검찰이 증언 거부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이 사건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0부(수석부장판사 이재홍)는 검찰 측의 신청에 따라 국정원 직원 최모 씨를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최 씨는 15일 열린 공판에 나오지 않았다. 최 씨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의 통신감청 부서인 8국의 팀장을 지냈다.
최 씨는 지난달 3일 열린 공판에도 나오지 않았고 같은 달 17일 공판 때는 강제 구인돼 법정에 나오긴 했지만 “증언해도 된다는 국정원장의 허가를 얻지 못했다”며 증언을 거부했다.
8국장을 지낸 곽모 씨도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1일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피고인 신분의 신 전 원장은 당시 공판이 끝난 뒤 곽 씨가 법정에 나타나지 않은 데 대해 “증인 하나도 데려오지 못하는 검찰이 어디 있느냐. 데려 올 자신이 없으면 (증인 신청을) 철회하라”며 오히려 검찰 측에 큰소리를 쳤다.
국정원은 지난달 말 검찰에 ‘전현직 직원들의 법정 증언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국정원직원법 제17조 2항은 ‘직원(퇴직자 포함)이 법령에 의한 증인으로서 직무상의 비밀에 관한 사항을 증언하고자 할 때에는 미리 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검찰은 15일 공판에서 “국정원이 1심 때는 직원들의 증언을 허가해 놓고 이제 와서 왜 증언을 막는지 모르겠다”며 “증언을 불허하는 이유에 대한 사실 조회를 거쳐 증언 불허 처분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국정원직원법이 당사자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보고 위헌법률 심판제청을 신청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재판부의 양해를 얻어 증언 과정을 비공개로 할 수도 있다는 뜻을 국정원 측에 전달했는데도 직원들의 법정 증언을 허가해 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검찰 내부에선 국정원의 반발 기류에 국정원장 교체가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있다.
국정원의 불법 감청에 대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던 김승규 전 원장이 물러나고 김만복 원장이 부임하면서 증언 거부 쪽으로 선회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승규 전 원장이 검찰 출신인 반면 김 원장은 1974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에 들어간 전형적인 ‘국정원 맨’이다.
변호인 측도 국정원 직원들의 증언 거부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변호인 측은 이날 공판에서 “비록 검찰이 신청한 증인들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증언을 거부하는 것은 검찰과 법원의 사법적 권위에 손상을 가하는 것”이라며 “특히 국정원장이 직원들의 증언을 허가하지 않으면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국정원 측은 “검찰이 직원들에게 신문하려는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고 법정에서 공개 증언을 할 경우 직원의 신분 노출에 따라 활동이 제약될 우려가 있어 증언을 허가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의 증언 거부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검찰의 요청에 따라 다음 주로 예정됐던 공판을 3주 후인 11월 5일로 연기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