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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비정규직 해소 ‘고통분담’ 말 바꾼 우리은행 노조

입력 | 2007-10-16 03:01:00


우리은행 노조가 산별(産別) 임금 가이드라인 3.2%에다 올해 동결했던 인상분 2.9%를 합해 내년 임금 6.1%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작년 12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올해 정규직 임금을 동결한 합의를 뒤집으려는 것이다. 합의서에 서명했던 마호웅 노조위원장은 “작년엔 임금 인상 여지가 없어 동결에 동의했지만 올해는 수익이 급증해 여유가 있으므로 임금을 보전해 줘야 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우리은행은 3월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오퍼레이터 등 307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임금 동결로 절약된 인건비 300억 원과 은행 측 추가 부담 80억 원이 재원이다. 노조가 “양보한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은행이 ‘탕감해 준 부채를 다시 물어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노조가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고 해서 ‘아름다운 동행(同行)’이라고 했던 사회의 찬사가 무색하다.

한껏 생색을 낸 뒤 이제 와서 은행 주주들의 몫 일부를 노조가 챙겨 가겠다는 얘기다. 연말 은행 노조위원장 선거를 의식해 각 은행 노조가 강경한 요구를 경쟁하듯 내놓는 것은 정규직 노조의 배부른 투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산업 현장에서 비정규직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만 간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과 함께 거꾸로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잃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달 중 공공부문 비정규직 7만1000명의 정규직 전환을 계획하고 있지만 공공부문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곳곳에서 마찰음이 들린다. 기업들은 정년 보장과 복지혜택 확대를 위한 비용에다 노사관리 비용 때문에 정규직 전환 부담이 힘겹다. 정규직이 양보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문제가 풀리기 어려운 이유다.

올해 다른 은행들은 신규 채용 4000명 중 2000명을 비정규직으로 뽑는 판에 우리은행이 900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한 것도 노조의 고통분담 덕분이었다. 그런데 1년도 안 돼 합의를 뒤엎으려는 우리은행 노조를 보면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려던 기업들마저 움츠러들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