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가면무도회’ 내달 1∼4일 공연
오페라는 대부분 여자들의 이야기다. ‘라트라비아타’, ‘아이다’, ‘나비부인’, ‘라보엠’, ‘토스카’, ‘루치아’ 등은 모두 프리마 돈나로 불리는 여주인공의 비극적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다음 달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는 다르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왕이면서도 금단의 사랑에 빠진 여자의 명예를 지켜 주기 위해 대신 죽음을 맞는 로맨틱한 테너가 주인공이다.
“1막에서 악보의 10쪽에서 130쪽까지 40분간 쉬지 않고 테너가 등장해요. 멋진 아리아도 2개나 부르고, 사랑의 2중창도 유명하죠.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비롯해 플라시도 도밍고, 주세페 디 스테파노, 카를로 베르곤치 등 역대 유명 테너들이 가장 탐내던 ‘테너의 꽃’으로 불리는 작품이죠.”(테너 이정원 씨)
‘가면무도회’는 서울시오페라단이 올해부터 2년간 선보이는 ‘베르디 빅5’ 시리즈 중 하나. 내년 4월 한국인 테너로서는 최초로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 무대에 서는 이 씨가 구스타프 3세 역을 맡아 화려한 테너의 기량을 뽐낼 예정이다.
베르디의 중기를 대표하는 걸작 오페라 ‘가면무도회’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실제 있었던 스웨덴 왕 구스타프 3세의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그랜드 오페라. 그러나 이 오페라는 실제 국왕의 시해 사건을 그린 탓에 검열 당국의 반대에 부닥쳤다. 그래서 신대륙 미국을 배경으로 보스턴 총독인 리카르도를 주인공으로 삼아 비극적인 삼각관계 이야기를 그려 1859년 로마 아폴로극장에서 초연됐다.
이번 공연은 한국 최초로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베르디의 원작 그대로 올려질 예정이다.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은 “‘가면무도회’는 자주 올려지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클래식 원본 그대로의 무대를 재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연출을 맡은 김은규 씨와 음악평론가 장일범 씨는 스웨덴의 왕궁과 오페라극장 등 실제 배경이 된 현장을 직접 촬영해 오기도 했다. 장 씨는 공연 시작 시 이 영상을 상영하며 오페라를 해설할 계획이다.
아멜리아 역을 맡은 소프라노 김인혜 씨가 부르는 아리아 ‘저 황야의 풀을 뜯어 내 사랑을 잊을 수만 있다면’, 레나토 역의 유승공 씨가 부르는 바리톤 아리아 ‘너였구나! 나의 명예를 더럽힌 자가’ 등 명곡이 즐비하다. 전설적인 알토 매리언 앤더슨이 흑인으로는 사상 처음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 서서 화제가 됐던 점쟁이 울리카 역(알토 장현주), 소프라노 조수미가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데뷔했던 시동 오스카 역(소프라노 박지현)도 눈길을 끄는 배역이다.
박 단장은 “서울시오페라단의 ‘베르디 빅5’ 시리즈는 바리톤이 주역인 ‘리골레토’, 테너가 주역인 ‘가면무도회’, 소프라노가 이끌어가는 ‘라트라비아타’, 베이스가 주인공인 ‘돈 카를로’, 모든 배역이 골고루 중요한 ‘운명의 힘’ 등 다양한 배역의 주인공을 감상할 수 있는 걸작으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2만∼12만 원. 1544-1887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