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지도 않았던 일 때문에 그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나는 결백합니다.”
1989년 10월 19일 영국의 한 법정을 걸어 나온 제리 콘론의 말에 영국 사회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15년 만의 석방. 그는 그토록 긴 세월을 누명을 뒤집어쓴 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그것도 종신형을 선고받고서.
사건의 발단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런던 근교 길퍼드에 있는 한 주점에서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5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친 참사였다. 당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영국 전역에서 폭탄 테러를 벌였던 시기.
경찰은 범인 색출에 나섰다. 이때 걸려든 사람이 콘론을 비롯해 패디 암스트롱과 폴 힐, 캐럴 리처드슨 등 4명. 이들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이른바 ‘길퍼드 4인방 사건’이었다. 이들은 살인죄로 철창신세를 져야 했다.
1989년 한 민권 변호사는 이들의 경찰 자술서가 조작된 사실을 발견했다. 자백도 강요된 것으로 드러나자 ‘즉각 석방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법원은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이 석방되는 날 공영방송 BBC는 이렇게 전했다.
“영국 사법 역사상 최대 실수로 간주되고 있다.”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과 유사한 ‘매과이어 7인방 사건’과 ‘버밍엄 6인방 사건’ 등이 잇달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매과이어 7인방으로 몰린 콘론의 아버지 주세페는 설상가상으로 옥살이 중 지병으로 숨지고 말았다.
콘론의 이야기는 훗날 대니얼 데이루이스와 에마 톰슨이 출연한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로 한 번 더 세상에 회자됐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책임진 사람은 없었다. 당시 수사경찰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영국 정부의 사죄도 굼뜨기는 마찬가지였다. 2000년 7월에 이르러서야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길퍼드 4인방에게 편지를 보내 “이런 일이 일어나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우리 사회도 권위주의 정권 등을 거치면서 사법 권력이 무고한 개인에게 정의롭지 못한 칼을 휘두르는 것을 적지 않게 경험했다. 이 때문에 콘론의 이야기가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