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일본 구마모토 현 야쓰시로 시립박물관에 전시된 ‘조선고면’. 사라진 3종의 하회탈 가운데 하나인 별채 탈로 추정된다. 야쓰시로=서영아 특파원
박물관 연구원 18세기 문헌보고 존재 처음 알아
올 1월 가정집서 대대로 보관하던 탈 직접 확인
사라진 하회탈(국보 121호) 중 하나로 추정되는 조선시대의 탈이 일본 구마모토(熊本) 현 야쓰시로(八代) 시립박물관에서 19일 일반에 공개됐다.
이 탈은 이날 시작된 전국시대 무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유품 전시회에서 85점의 다른 유품과 함께 ‘조선고면(朝鮮古面)’이란 이름으로 전시됐다.
이 탈은 전시장 입구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배치됐고 옆에는 탈을 360도 각도에서 촬영한 3D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바로 옆에는 한국의 하회탈에 대한 사진과 설명이 쓰인 패널이 걸려 하회탈과의 연관성을 짚고 있다.
이 탈이 발견된 것은 올해 1월. 이 박물관 학예연구원 도리즈 료지(鳥津亮二) 씨가 2년 전부터 고니시 관련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사료를 뒤지던 중 ‘기타마쓰에(北松江) 마을 농민의 집에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가져온 커다란 가면이 있다’는 18세기 지방사료 ‘히고(肥後·구마모토의 옛 이름)국지’의 기록을 발견했다.
도리즈 씨는 그 뒤 동료 학예원에게서 “10여 년 전 어느 가정집에서 임진왜란 때 조상이 조선에서 가져왔다는 커다란 가면을 본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집을 찾아가 실물을 확인했다.
전시된 탈은 가로 21cm, 세로 25.6cm로 일본의 가면에 비해 매우 크다. 이마는 11.6cm, 코 높이가 14cm에 이를 정도로 얼굴의 굴곡이 커 일본의 가면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박물관의 후쿠하라 도루(福原透) 학예계장은 “하회탈 사진과 비교해 보면 눈의 표정이나 뺨의 주름, 코의 느낌이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물관 측은 “이 탈이 임진왜란 때 가져온 조선시대 가면이란 점은 확실하지만 하회탈인지는 알 수 없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나타냈다.
박물관 관계자는 “탈을 일개 농민 가정에서 대대로 400여 년간이나 보관해 왔다는 점 자체도 대단한 일”이라며 “야쓰시로 지역으로서도 귀중한 사료지만 한국의 탈 역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탈의 보존 상태는 좋지 않은 편이었다. 벌레가 먹고 건조해져 오른쪽 뺨과 턱 일부가 유실됐고 만지기만 하면 부스러져 박물관 내에서도 운반이 어려울 정도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 탈과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와 2점도 함께 전시됐다. 기와들은 고니시가 생전에 이 지역에 세웠던 무기시마(麥島) 성 유적에서 출토됐으며 제작 기법 등으로 볼 때 조선의 것이 확실해 역시 임진왜란 때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야쓰시로는 인구 13만 명의 작은 도시로 박물관은 구마모토 공항에서 버스로 1시간, 다시 택시로 15분 정도 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전시회는 11월 25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한편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69호 하회 별신굿 탈놀이 예능 보유자 김춘택(할미 탈 역) 씨는 “그 탈이 실제로 사라진 하회탈 중 하나로 확인된다면 탈놀이 복원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표 하회동 탈 박물관 관장은 22∼25일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와 함께 이 박물관을 방문해 탈을 조사하고 정밀 실측해 별채(세금을 징수하는 포악한 관리) 탈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로잡습니다▼
△19일자 A1, 16면 ‘‘별채 탈’ 日서 400년 만에 발견’ 기사에서 이 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은 하치다이(八代) 시립박물관이 아니라 야쓰시로(八代) 시립박물관입니다. 일본어에서는 같은 한자라도 음으로 읽느냐(음독), 뜻으로 읽느냐(훈독)에 따라 발음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八代’라는 지명은 뜻으로 읽어야 하는데, 음으로 읽어 실수가 빚어졌습니다.
야쓰시로=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