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 책 내일까지 반납해야 해요.” “아이코, 이거 내일까지 읽을 수 있으려나.”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온 강노을 양이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어머니 최부용 씨에게 책을 배달하고 있다. 이 모녀의 목표는 함께 작가 김훈의 책을 독파하는 것이다. 김재명 기자
강원 춘천시 송화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2층에 있는 마을 도서관에서 즐겁게 책을 읽고 있다. 춘천=김재명 기자
“우린 책 배달부… 어른들은 주경야독”
“두달 전 세운 도서관에 재미있는 책 많아
빨간 책주머니 들고 매주 한두 권씩 선물”
저는 강원 춘천시 송화초등학교 4학년 1반 강노을입니다.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면 우리 반 친구 7명은 한바탕 달리기 경기를 벌입니다. 그렇게 달려가는 곳은 ‘솔빛도서관’. 바로 우리 학교 2층에 있는 마을 도서관입니다. 8월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책이 무지하게 많이 들어오면서 우리 도서관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도서관이 됐습니다. 그동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베스트셀러부터 과학책, 역사책까지 다 볼 수 있으니까요. 가을운동회가 끝난 다음 날에는 빨간 주머니까지 선물로 받았습니다. 책상에 집배원 아저씨 가방 같은 붉은 가방이 있기에 심은혜 독서선생님께 물어보니 ‘책주머니’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말씀하셨어요. “이제부터 매주 두 권씩 이 가방에 담아 배달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부지런한 ‘책 배달부’가 됐지요. 엄마 아빠를 비롯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주위 어른들께 매일 하루에 두 권씩 배달한답니다. 우리 집에 꽂힌 책이라곤 농사에 관한 책밖에 없지만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어요.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 그러니까 우리 큰오빠가 한 살이었던 19년 전에 이곳 송암골로 이사왔습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아빠는 시인의 꿈을 잠시 접고 ‘귀농’을 하신 겁니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이지만 우리 집엔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어요. 작은 방 하나가 책으로 가득 찼으니까요. 그런데 큰일이 났습니다. 제가 다섯 살 때인 1999년 설날 전날, 가족이 모두 명절을 쇠러 간 사이 집에 불이 났어요. 슬레이트로 된 우리 집은 까맣게 재로 변했고 책 3000권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답니다. 집은 다시 흙으로 지어 새 집이 됐지만 타 버린 책들은 영영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 후로 엄마와 아빠는 말없이 농사만 지으셨습니다. 고추, 감자도 심고 된장도 담그고 가꿔 놓은 텃밭이 제법 된대요. 집이 불탄 후론 아빠도, 아빠처럼 오래전에 국문학을 공부한 엄마도 예전처럼 시집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면 ‘한때의 열정’이셨대요. 그 대신 매일 아침 나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엄마는 낮에는 농사일에, 저녁엔 밥을 짓느라 바쁘십니다. 이제 눈도 어른거려 글자가 퍼져 보인다고 하시고 “시집 한 권 사 보려고 해도, 니들 먹이고 입혀야지…”라고 하십니다.
도서관에 책이 많이 들어온 후로 저는 김훈 아저씨 책을 알게 됐습니다. 요즘 읽는 건 ‘자전거 여행’. 짧은 문장으로 그렇게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제 친구 한빈이는 제가 잘난 척하려고 어려운 책을 읽는다고 놀리지만 저는 이 책이 정말 좋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무작정 책주머니에 ‘칼의 노래’를 담았어요. 엄마가 이 책을 읽었으면 했으니까요. 바쁜 농사일에 고된 몸으로 짬짬이 책 읽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엄마도 아저씨의 단문에 감동 받으신 눈치예요.
얼마 전 김훈 아저씨의 직업이 기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전 다시 꿈꾸게 됐습니다. 저의 오랜 꿈인 기자가 꼭 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아저씨 책을 우선 다 읽을 겁니다. 아직 우리 도서관엔 아저씨의 책이 두 권밖에 없지만요. 아저씨의 책이 들어오기만 한다면 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책 배달부가 되어 엄마한테 책을 전해 드릴 겁니다. 누구보다 내가 기자가 되길 바라는 엄마도 같이 책을 읽기로 약속했으니까요. 매번 반납 일을 지키지 못해 “아이고, 이거 내일까지 다 읽을 수 있으려나”라고 하시지만. 그리고 “엄마 책 읽는 거 좋아”라고 물으면 “응, 잠이 빨리 와서 좋아”라고 하시는 우리 엄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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