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법대로 살겠습니다.’ 19일 경북 문경시 봉암사에서 열린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 대법회’에 참가한 스님들이 비를 맞으며 예를 올리고 있다. 문경=홍진환기자
“부처님 법대로 살자” 봉암사 결사 60주년 19일 경북 문경시 봉암사에서 열린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 대법회’에서 스님들이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대웅전 앞에서 예를 올리며 수행 풍토를 진작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문경=홍진환 기자
1947년에 불교 구한 ‘그때 그정신’ 회귀 염원
함현스님, 정치파벌 일소 - 수행풍토 복귀 제안
법전종정 “곧은 것과 굽은 것 모두 놓자” 법어
경북 문경시 희양산 봉암사에는 19일 오전 가을 소낙비가 세차게 내렸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비롯한 승려와 신도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 대법회가 열리기 직전이었다. 비 때문에 참석자들 사이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대웅전과 누각 처마 밑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오전 11시, 우중에도 법회는 정시에 시작됐다. 참선 수행을 하는 수좌승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1000여 명의 스님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관이었다. 스님들은 우중에도 우의를 입지 않았고 우산도 접었다. 빗물이 뺨을 타고 턱 아래로 흘렀다.
최근 불교계는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세간이 출세간을 걱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신정아 변양균 씨 사건도 뿌리 깊은 조계종 내부 갈등의 결과물이었다. 전 마곡사 주지의 횡령사건으로 스님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날 봉암사 대법회는 조계종의 일대 변화와 혁신의 분기점으로 인식됐다. 1947년 조선조의 억불정책과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으로 불교의 근간이 흔들리고 왜색 불교가 판을 칠 때 ‘부처님 법대로 살자’며 결사에 돌입했던 ‘그때 그 정신’으로의 회귀를 염원하는 자리였다.
특히 선방에서 말없이 수행 정진해온 수좌승들이 대거 참석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수좌승들의 목소리는 봉암사 주지인 함현 스님의 경과보고 때 드러났다. 함현 스님은 “이 땅의 불교는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봉착해 있다”며 “봉암의 대중에게는 한 사발의 맑은 죽이 씀바귀처럼 쓰고 한 가닥 얇은 가사는 태산처럼 무겁기만 하다”고 수좌승(봉암대중)들의 결연한 심경을 대변했다. 실제 일부 수좌승은 대법회에 앞서 모임을 갖고 “일부 정치승이 물을 다 흐렸는데 왜 수좌들이 참회를 해야 하느냐”며 강력히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함현 스님은 또 당초 원고에 없던 3가지를 제안했다. △개혁이란 명분으로 실시되는 일체의 선거법 철폐와 공의(公議)에 의한 청정화합 △승가를 오염시키는 정치적 파벌 일소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결사정신의 수행 풍토로의 복귀 등이다. 선거를 빌미로 이뤄지는 종회 각 계파 간 권력 쟁투와 파벌 싸움, 비리 부정을 몰아내자는 것이다. 이는 총무원과 동국대 이사진 등 조계종 내 여야를 향한 수좌승들의 강력한 경고로 풀이됐다.
수좌회 의장인 영진 스님은 참회문에서 “저희는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했고, 수행보다 명리를 탐하였으며, 칭찬보다 비방을 일삼았고, 지혜보다 지식 얻기를 즐겼으며, 화합보다 분열을 조장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이날 법회에선 ‘자성’ ‘참회’ ‘혁신’이란 말이 주종을 이뤘다. 지관 총무원장은 “우리가 봉암사 결사의 뜻을 쇠잔하게 만들었다면 우리는 선사들에게 큰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구 본사 주지들도 “작금의 문제가 사찰 운영의 영역에서 비롯된 것이 적지 않기에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부대중께 머리 숙여 참회한다”고 밝혔다.
법상에 오른 법전 종정은 “여기 모인 대중이 역순을 자제하는 기틀로 곧은 것과 굽은 것을 모두 놓아 버리면 시방의 종지가 한 곳으로 모일 것이요, 정(正)과 사(邪)의 시비가 원융(圓融)을 이룰 것”이라고 법어를 내렸다.
중도(中道)를 강조한 것처럼 보였지만 불교계 내 파벌 싸움을 질타한 것이라는 풀이도 있었다.
법회는 무사히 끝났고 사부대중은 산문을 빠져나갔다.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그들의 머리 위에 가을 햇살이 환하게 쏟아졌다.
■ 봉암사 결사
“일제 불교 폐습 혁신” 60년전 첫수행 돌입
982년 조계종 종립특별선원으로 지정돼 산문을 폐쇄하고 사시사철 안거를 계속하는 봉암사의 특별한 전통은 60년 전인 1947년 벌어졌던 ‘결사(結社)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대처(帶妻)제를 중심으로 한 왜색 불교의 영향으로 광복 직후에는 종풍이 흐려지고 출가자와 일반인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성철 청담 자운 보문 우봉 스님은 이런 폐습을 혁신하고자 봉암사에 들어가 수행에 돌입했다.
좌우대립의 격화와 6·25전쟁의 발발로 2년여밖에 지속되지 못했지만 봉암사 결사가 불교계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이 결사에 참여한 선승들은 후일 불교계를 주도하는 재목으로 커 나가 성철 스님을 비롯한 4명의 종정과 지관 현 총무원장 등 7명의 총무원장을 배출하게 된다.
문경=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