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브란스’의 1차 포스터(왼쪽)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받아 수정된 포스터(오른쪽). 사진 제공 미로비전
요즘 만난 영화 마케터 중에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가 강화됐다며 울상인 사람이 꽤 있었다. 11월 8일 개봉하는 영화 ‘세브란스’는 포스터만 7개 버전을 만들었다. 오리지널 포스터에는 사람의 잘린 목 단면까지 나왔지만 수입사가 자체 정화해서 5가지 포스터를 제시했다가 다 퇴짜를 맞았다. 칼을 드릴로 바꾸고 피도 좀 닦은 뒤 다시 심의를 요청했더니 이번엔 카피가 걸렸다. ‘사지절단 잔혹 코미디’에서 ‘절단’ 때문. 그래서 ‘2007년 최고의 스플래터 무비’로 바뀌었다. ‘스플래터’는 피가 튀고 살점이 ‘절단’되는 공포 상황을 코믹하게 표현하는 영화를 뜻한다. 이 영화는 예고편도 자막의 ‘화끈한 파티’가 ‘죽이는 파티’로 수정되는 등 5번째에야 통과됐다.
상영 중인 ‘어깨너머의 연인’도 예고편에서 주인공 정완(이미연)의 “섹스를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이유 없이 몸이 아파 온다”처럼 섹스에 대한 대사들, ‘남자들은 모르는 그녀들의 누드 토크’에서 ‘누드’가 걸려 세 차례나 심의를 받았다. “아니, 누드 김밥도 있는데….”(영화 관계자)
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도 예고편에서 베드신이 잘렸고, 독립영화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의 예고편은 전체적으로 유해한 영상이라는 판정을 받아 예고편을 전면 재편집했다.
영등위 심의위원과 담당자에게 물어봤다. 그들은 심의가 강화된 게 아니라 요새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포스터나 예고편이 많아졌다며 ‘누가 봐도 성기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한 막대 사탕을 문 입술을 클로즈업한’ 영화 ‘색화동’의 포스터를 예로 들었다. 영화는 관람 등급이 나뉘지만 포스터나 예고편은 초등학생에게도 노출되는 ‘전체관람가’이기 때문이란다.
‘색화동’ 제작사인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는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색화동의 포스터는 ‘은유’일 뿐”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걱정했다. 욕이나 비속어는 안 된다는 등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영등위는 구체적인 심의기준을 마련하면 그 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더 억압하는 결과가 된다고 했다. ‘꽉 잡아, 이년아’라는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카피는 분명히 욕설이지만 할머니가 손녀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에 통과가 됐다. 같은 단어, 같은 장면이라도 전체적인 주제와 내용에 따라 판단한다는 것. 그러나 남녀가 같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면 몰라도 구체적인 정사 장면은 절대 안 된단다.
양쪽의 말에 다 공감이 갔다. 딜레마다. 공포 영화나 에로 영화는 어떻게 개성을 드러내야 하는 걸까. 예고편이나 포스터가 반려됐다는 뉴스가 오히려 “도대체 어떻기에”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맘만 먹으면 인터넷에서 원래의 포스터와 예고편을 찾을 수도 있는 이 ‘눈 가리고 아웅’의 상황은 어쩌나. 참, 이 칼럼은 자체 기준으로 15세 이상이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