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3마리, 닭 300마리, 황복 도미 등 생선 100마리, 배추 20박스, 무 1000개, 달걀 300판, 쌀 3가마…. 동아일보에 연재된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식객’에 쓰인 음식 재료다. ‘식객’은 관객을 사정없이 배고프게 만드는 음식의 향연이 펼쳐지는 ‘맛의 영화’. 그러면서도 음식보다는 ‘사람’이 주가 되는 영화다. 주인공 성찬(김강우)과 그의 라이벌 봉주(임원희)가 조선 말 임금의 요리사였던 대령숙수의 칼을 놓고 벌이는 궁중요리 경연대회에서 대결을 벌이는 과정이 주요 내용. 원작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이 대회를 중심으로 압축했다. 임금을 울린 쇠고기탕 이야기나 성찬과 할아버지의 관계 등은 원작에는 없다. 특히 주인공들의 할아버지가 대령숙수의 제자로 활동하던 조선 말의 상황과 현재를 연결해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은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릴 듯하다. 음식영화 ‘식객’의 음식과 사람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 情으로 양념한 맛있는 영화 ‘식객’
황복회에서 시골밥상까지… 150가지 음식 값만 1억
음식감독인 ‘푸드 앤 컬쳐’ 김수진 원장이 이끄는 푸드팀 20여 명이 만든 총 150여 가지의 음식에 1억 원 정도가 들어갔다. 가장 비싼 음식은 성찬과 봉주의 과거 장면에 나오는 황복회. ‘죽음과도 바꾸는 맛’이라는 황복회 최상품은 100만 원이 넘는다. 재료로는 600만 원이 넘는 최상급 한우가 최고가를 기록했다.
경연대회는 예선부터 조(鳥), 어(魚), 적(炙), 도축된 소를 부위별로 나누는 쇠고기 정형, 쇠고기탕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때는 화면 분할 방식으로 요리의 다양한 장면을 한꺼번에 빠르고 현란하게 보여 준다.
김 원장은 “꿩 살로 만두를 빚는 꿩만두 전골과 도미 살로 전을 부쳐 면과 함께 끓여 먹는 도미면이 제일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또 성찬과 봉주가 똑같이 육회를 만드는 장면에선 음식으로 그들의 캐릭터를 표현했다. 야심이 강한 봉주의 육회는 화려한 장미꽃 모양. 반면 성찬은 정갈하게 밥공기를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연출했다.
성찬이 그의 든든한 지원군인 방송국 VJ 진수(이하나)에게 차려 주는 시골밥상도 빼놓을 수 없다. 텃밭에서 채소 뽑고 두부를 썰어 넣어 끓인 된장찌개와 가마솥밥 계란말이 등으로 차렸지만 관객들이 군침을 꿀꺽 삼키도록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가장 ‘시골스러운’ 장아찌를 세 종류나 만들었고 계란물을 쏟는 한 장면을 위해서는 계란 15판을 써야 했다.
“정형 직접 해 보니 쇠고기 먹을 때 감사가 절로”
음식 만드는 장면을 위해 배우들은 반 요리사가 됐다. 김강우가 힘들게 배운 음식은 가장 쉬워 보이는 계란말이. 그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불의 세기 조절과 차례로 말아 가며 겹겹이 쌓아가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너무 빠르거나 느리면 모양이 안 난다”며 “계란말이 하는 모습을 보면 성격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임원희는 자신 있는 음식으로 다진 쇠고기와 두부로 만든 섭산적을 꼽았다. “부드러움이 포인트라 고기를 다지는 기술이 중요하죠. 반죽에 기포가 들어가지 않도록 반죽을 양손에 쥐고 때리듯 치대는 기술도요.”
이들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은 쇠고기 정형. 이들은 정규 소 정형 교육을 받았다. “소 정형은 하나의 예술입니다. 소의 골격, 근육의 위치, 혈관의 흐름을 파악하고 길이 20cm 단도 하나로 모든 부위를 구분해 나누는데 처음에는 칼날이 뼈에 박혀 부러지기도 하고 귀한 부위에 온갖 상처를 내기도 했어요. 소 정형을 배운 이후 고기를 먹을 때 항상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해요.”(김강우)
“음식 얘기가 아니라 음식에 얽힌 사람 얘기”
화제는 음식에 집중되지만, 이 영화는 사람 이야기다. 오히려 음식 자체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전윤수 감독은 “음식에 얽혀 있는 사람 이야기지 사람에 얽혀 있는 음식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성찬이 키우던 소를 죽여야 하는 얘기를 통해 요리사와 재료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 원작에도 있지만 영화에선 그 감정을 더 세게 표현한다. 요리사가 재료에 마음을 쏟고 그 희생에 감사함을 말하고 싶었다는 것.
이 영화에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음식은 두 가지다. 성찬이 차린 시골밥상, 그리고 한 사형수가 동치미 국물과 함께 허겁지겁 베어 먹는 어머니의 추억이 서린 고구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만든 이의 마음이 들어 있는 음식,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라는 소박한 교훈. 감독은 “우리가 음식을 갖고 너무 잘난 척하고 있는 게 아닌가”에 대한 반성이라고 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 허영만 화백이 본 영화 ‘식객’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돼 있는 만화 ‘식객’을 영화화하려면 한 에피소드만 영화로 만들기도, 여러 개를 섞기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개 에피소드를 잘 조합해 영화와 만화가 똑같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만화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도 않게 만들었다.
시작하자마자 황복의 머리를 칼로 확 내리치는 장면이 나온다. 좀 심한 스타트가 아닌가 했는데 “처음 5분 안에 음식 영화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려고 했다”는 게 감독의 말이다. 이후 감독은 아주 스피디한 연출을 했다. 중간 이후 좀 처져서 불안했는데 결국 그게 결말로 달려가기 위한 ‘숨고르기’라는 것을 알았다. 다만 대령숙수의 일화에서 약간 템포를 늦춰 대령숙수의 칼이 왜 중요한지 관객에게 더 상세히 설명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일본인이 ‘한국인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쇠고기 탕 얘기를 할 때는 감동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진수 역 이하나의 생기발랄한 연기가 좋았다. 또 만화에는 없는 조연 두 명, 성찬의 고향 선배로 성찬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호성(정은표)과 봉주의 오른팔이면서 호성의 군대 후배로 라면 끓이는 법에 집착하는 인물인 우중거(김상호)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극에 전체적으로 ‘양념’을 쳐 주었다. 그러나 성찬의 라이벌인 봉주의 캐릭터가 심사위원에게 돈 봉투를 주는 등 너무 눈에 뻔히 보이는 악인으로 나오는 것이 아쉬웠다.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심각한 영화는 아니지만 웃음도 주고 눈물도 준다. 특히 성찬이 키우던 소를 잡을 때 우는 사람이 많았다. 촬영 뒤에 개봉까지 8개월 이상이 걸려 배우나 감독의 마음고생이 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보상되지 않을까 싶다. 프로듀서가 나에게 소감을 묻기에 “관객들이 혹시 외면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이겼다”고 말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