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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편지]전은희/신원진술서에 사생활 침해 항목 수두룩

입력 | 2007-10-23 03:03:00


미국 유학 중 연구를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대학원생이다. 체류 기간 중 한 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교사로 일할 기회가 생겨 채용에 필요한 서류를 구비하던 중 난생처음 신원진술서라는 양식을 접했다. 그런데 이 양식은 법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하는 헌법에 위반될 법한 항목이 많았다. 기밀로 유지돼야 하는 생체 정보인 혈액형, 신장, 체중을 기입하는 난을 시작으로 본인 및 배우자, 혹은 친권자의 재산을 동산 부동산으로 나눠 상세히 기입하도록 돼 있다. 가족 구성원은 물론 교우의 주민등록번호, 최종학교명, 직장, 직위명, 또한 거주지를 기입하는 난도 있었다. 뒷면에는 ‘이 내용은 사실과 다름이 없으며 허위진술로 인해 발생하는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할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문구도 있었다. 엄연히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하는 상위법이 있는 국가에서, 신원조회에 직접 관련 없는 중요한 사생활의 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하고, 고의든 아니든 제공한 정보에 오류가 있을 때는 불이익을 감수할 것까지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교사를 선발하는 데 있어 신원조회는 중요하다. 미국의 대학에서도 조교 강사 교수를 임용할 때는 반드시 신원조회를 거치도록 한다. 단, 신원조회의 목적이 범법자를 가려내는 데 있으므로, 임용 당사자는 범법 사실의 유무를 진술하는 양식에 사회보장번호를 기입하고 서명만 하면 된다. 나머지 조회 업무는 경찰에서 담당한다.

한국의 신원조사는 조사과정 비공개,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보안법 준수라는 명목으로 위헌의 논란이 있는 조항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면서도 성추행범을 원어민 교사로 임용할 만큼 비효율적인 한국의 신원조회 절차는 빠른 시일 내에 수정돼야 한다.

전은희 미국 노던 애리조나대 응용언어학 박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