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노동자당 소속 게릴라를 추적하는 터키 특수부대원이 22일 이라크 국경 근처에서 수색작전을 펼치고 있다. 실로피=EPA 연합뉴스
이라크-터키 국경지대에서 쿠르드족과 터키군이 유혈 충돌했다.
이번 충돌은 터키 의회가 쿠르드족 무장세력 진압을 위해 이라크 국경을 넘어 군사작전을 벌일 수 있도록 승인한 지 나흘 만에 일어난 것. 쿠르드족의 습격으로 시작된 이번 교전에 터키 정부가 강력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대규모 확전 가능성이 거론되는 한편 정면충돌을 우려한 양자 간의 무력사용 자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터키 내 쿠르드 지역을 중심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해온 쿠르드노동자당(PKK) 소속 게릴라 200여 명이 21일 새벽 국경에서 불과 5km 떨어진 하카리 주 다글리차 마을 근처의 터키군 캠프를 공격했다. 이날 습격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최소 12명의 터키군이 사망하고 16명이 다쳤다.
곧바로 반격에 나선 터키군은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기지 60여 곳을 집중 포격해 쿠르드족 32명이 사망했다.
이 충돌사태와 별도로 국경 인근 도로에서는 PKK가 교량에 설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버스에 타고 있던 민간인 17명이 부상했다.
압둘라 귈 터키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이날 저녁 정부 및 군 고위 관리들을 소집해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22일에도 각료회의를 열어 군사작전 개시 시기 등을 논의했다.
귈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터키 정부는 PKK를 응징하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터키군이 이라크와의 국경 지대에 탱크와 공격용 헬기를 앞세운 10만 병력을 집결시킴에 따라 확전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미국의 자제 요청을 받은 터키가 즉각적인 보복 공격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22일 “어제 메메트 괴뉠 터키 국방장관과 만나 ‘쿠르드 무장세력의 도발이 지속되고 있지만 대대적인 월경 작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그는 “괴뉠 장관이 일방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을 주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도 에르도안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괴뉠 장관은 “월경 작전을 계획하고 있지만 작전이 즉각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PKK는 22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터키가 쿠르드 반군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고 월경 작전을 포기한다면 휴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터키 외교장관이 이라크를 전격 방문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쿠르드족 문제에 대한 터키와 이라크의 협력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의 한 측근은 22일 “호샤르 제바리 이라크 외교장관이 이라크 의회에 출석해 ‘알리 바바칸 터키 외교장관이 23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쿠웨이트를 방문 중인 바바칸 장관은 “바그다드를 언젠가 방문하겠지만 아직 날짜를 확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바바칸 장관은 이날 쿠웨이트시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군을 파견하기 이전에 외교적 노력을 다할 것이지만 실패하면 (무력이라는)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