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당 대선 후보들이 결정된 뒤 대선 주자 초청 TV토론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정작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TV토론이 후보 변별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선거구도 자체가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데다 말잔치에 그치는 토론 내용에 이르기까지 복합적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쏟아지는 TV토론, 외면하는 유권자들=‘말은 풀고 돈은 묶는다’는 취지에 따라 1997년 대선 때부터 도입된 대선 후보 TV토론은 시행 첫해에는 시청률 55.7%까지 기록하며 유권자를 ‘안방 정치마당’으로 불러 모았다. 하지만 2002년 대선 당시 시청률이 줄곧 한 자릿수대로 떨어진 데 이어 올해 들어 개최된 각종 TV토론은 시청률이 4∼5%대에 머물고 있다.
MBC ‘100분 토론’의 경우 11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토론회는 4.9%, 18일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토론회는 5.1%에 그쳤다. 지난달 13일 SBS의 이 후보 토론회는 4.1%였다. 또 당내 경선 토론회는 한나라당이 4.8∼6.1%였고 대통합민주신당은 3.7%를 넘지 못했다.
2002년의 경우 한나라당과 민주당 경선 토론회는 각각 7∼8% 선이었으며 11월 초에 열린 KBS의 후보 초청 토론회도 7∼9%로 올해보다 높았다.
반면 TV토론 횟수는 크게 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KBS 등 6개 지상파 TV가 1997년 15차례, 2002년 29차례 경선 및 대선 후보 토론회를 방영했으나 올해 대선에선 지금까지 12차례를 비롯해 40차례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늘어난 TV토론이 유권자들의 주목을 끌지 못함에 따라 TV토론을 지지율 만회의 결정적 무대로 기다려 온 범여권 후보들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토론 기회 마련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정 후보가 21일 이 후보와의 ‘밤샘 TV토론’을 제안한 것도 이 같은 자리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이 후보의 유일한 ‘맞짱 상대’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겠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기형적 선거구도, 백화점식 말잔치에 선거 관심 퇴조=이처럼 TV토론이 관심을 못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 지지율 50%를 웃도는 이 후보와 나머지 후보들 간의 이례적인 비대칭 선거구도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더욱이 11월 중순으로 예상되는 범여권 후보들 간의 단일화 성사 때까지는 이 후보와 정면승부를 할 범여권 대표 주자가 함께 참여하는 TV토론 자체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달 말까지 각 방송사가 계획해 둔 TV토론은 주로 범여권의 개별 후보를 불러 놓고 진행하는 단독 토론이어서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각 당의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또한 방송사들도 시청률이 낮은 대선 후보 TV토론을 심야 시간대에 배치해 시청률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대선 후보의 TV토론이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토론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갈수록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실제 토론 프로그램은 한때 주말 오후 10시 무렵에 배치돼 10%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현재는 모두 심야 시간대에 편성되고 시청률도 2∼3%대에 그치고 있다.
나아가 방송사 간 차별화된 중점 이슈를 중심으로 후보 간 차이를 부각하기보다는 백화점식 질문에 기계적으로 질문과 답변 시간을 똑같이 할당해 ‘재치문답식’ 토론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각 당 후보들의 푸념이다.
오창우 계명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토론에 익숙지 않은 한국의 문화 속에서 서구의 토론 프로그램 형식만 따 왔기 때문에 토론의 형식과 내용이 모두 겉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선거문화에 맞는 토론 기법 개발해야=1997년 대선 후보 TV토론이 시작될 때와 비교해 보면 10년 사이에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후보자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각종 수단이 늘어나는 등 선거 환경이 급격히 변했다. 그런데도 TV토론의 내용과 형식은 10년 전 그대로라는 것이 근본적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앙대 장훈(정치외교학) 교수는 “TV토론 독점 시대가 깨지고 후보자의 외모에서 말투까지 과잉 노출이다 싶을 정도로 선거문화가 변화를 거듭했다”면서 “사회자나 토론자가 더 권위를 인정받고 진지하게 다뤄질 수 있도록 새로운 틀과 내용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KBS 김찬태 선거방송프로젝트팀장은 “방송사들이 비슷한 형식과 질문으로 후보 초청 토론회를 진행하다 보니 시청자들은 같은 얘기의 반복으로 느낄 수 있다”며 “방송사가 합의해 후보 토론을 정치 외교 남북문제 경제 사회 등 주제별로 나누거나 질문 형식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한 방송사 관계자는 “선관위 주관으로 후보자 합동토론을 할 경우 (지지율 5% 이상 또는 의석수 5석 이상 정당 소속인) 6명가량이 나와야 하므로 정상적 토론이 어렵다”며 “방송사 자율로 상위 1∼3위 후보만 초청하는 토론 방식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