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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826년 佛정신의학자 피넬 사망

입력 | 2007-10-25 03:03:00


한 의사의 운구 행렬에 수많은 노부인이 울면서 뒤따랐다. 길게 늘어선 추모 인파엔 끝이 보이지 않았다.

1826년 10월 25일 프랑스 의사이자 학자인 필리프 피넬이 뇌중풍(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장에는 거리의 부랑자, 유랑생활을 하는 사람, 도시 빈민 등 다양한 사람이 몰렸다. 대부분 한때 정신질환을 앓았던 사람이었다.

18세기 말만 해도 서구에선 정신질환자들을 동물이나 악마 혹은 ‘귀신이 들린 존재’로 여겼다. 악마를 쫓아내야 한다며 몽둥이로 때리거나 죄수 빈민 부랑자 등과 함께 집단수용소에 감금했다.

환자들이 수용된 영국 런던의 베들레헴병원이나 파리의 비세트르병원 등 유명한 ‘인간 동물원’에는 주말마다 수천 명의 유료 관람객이 몰렸다.

피넬은 정신질환에 걸린 친구가 숲 속을 헤매다 늑대에게 물려 죽은 뒤 정신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정신의학을 연구하면서 의학 잡지를 통해 정신질환자 수용소의 비참한 실태를 꾸준히 고발했다.

프랑스 혁명기인 1793년 비세트르병원장에 임명된 피넬은 정신질환자들을 묶어 놓았던 쇠사슬을 풀어 줬다. 그는 환자의 증상을 자세히 기록해 5가지로 분류한 뒤 치료법을 찾았다. 맑은 공기와 운동, 사회활동이 정신질환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권력자들은 혁명기의 정적(政敵)을 감금하는 수단으로 정신병원을 악용한 경우도 많아 피넬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피넬은 정신질환은 질병일 뿐이란 신념을 갖고 ‘치료’와 ‘해방’을 포기하지 않았다. 2년 뒤 그는 6000명의 여성 정신질환자 가운데 매년 50여 명이 죽어 나가는 살피트리에르병원의 책임자로 옮긴 뒤 의료시설과 병원 환경을 크게 바꿔 놓았다.

그는 나폴레옹의 주치의가 돼 달라는 제안도 거절하면서 대학에서 정신질환 연구를 계속하다 세상을 떠났다. 1885년 프랑스 의학계는 끊어진 쇠사슬을 손에 든 피넬의 동상을 살피트리에르병원 앞에 세워 그의 인도주의를 기렸다.

그의 연구는 의학뿐 아니라 근대적 이성 개념의 확립에도 기여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피넬은 육체의 쇠사슬을 걷어 냈지만 정신의 쇠사슬을 채웠다”며 “이로부터 광기(狂氣)는 이성보다 열등한 것으로 치부됐고 사회규범을 따르는 일이 억압적으로 강요됐다”고 말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