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카리스마, 경영능력 3가지 자질을 모두 갖춘 정치인은 거의 없다. 비전만 가지면 모호한 이론가다. 카리스마만 지니면 위험한 선동 정치인이다. 경영능력만 갖추면 상상력 없는 보수 정치인이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이 3가지 덫을 뛰어넘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지난해 출간한 ‘미테랑 평전’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1916년 10월 26일 태어난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좌파 정치인이다. 명문 시앙스포(파리정치대)에서 법학 문학 정치학 등을 두루 공부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정계에 입문했다. 1965년 구국의 영웅 샤를 드골 장군과 대결을 벌인 대통령선거에서 결선투표까지 가는 팽팽한 접전 끝에 석패했지만 국민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71년 사회당을 창당한 그는 1974년에 이어 세 번째 도전인 1981년 대선에서 승리해 엘리제궁에 입성했다. 곧바로 기간산업 국유화, 근로시간 단축, 유급휴가 연장 등 급격한 사회주의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제 침체 여파로 경제가 위축되자 국민은 1986년 총선에서 우파에 과반수 의석을 선사했다. 그러자 자크 시라크를 총리로 기용해 사회당 대통령과 우파 총리가 나라를 이끄는 동거정부(코아비타시옹)를 출범시켜 정치 안정을 꾀했다.
미테랑은 위기 때마다 절묘한 정치력을 발휘하며 1988년 대선에서 다시 시라크를 물리치고 프랑스 5공화국 최장수 대통령이 됐다. 1993년 총선에서 다시 우파가 압승을 거두자 우파의 에두아르 발라뒤르를 총리로 기용해 두 번째 동거정부를 출범시켰다.
미테랑은 공식적으로 ‘외교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가’를 선언하고 유럽 통합에 나섰다.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 체결을 통해 오늘날의 유럽연합(EU)을 건설한 것은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와 굳건히 손을 잡은 미테랑의 집념의 결과였다. 1996년 1월 8일 미테랑이 사망하자 당시 프랑스 우파는 물론 펠리페 곤살레스 스페인 총리와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총리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칭송했다.
아탈리가 미테랑을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이념에 집착하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국가를 넘어 유럽까지 잘 경영했기 때문이다. 미테랑은 대선의 해를 맞은 한국의 유권자들이 대통령 후보를 평가할 때 참고로 삼을 만한 인물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