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일부와 국정감사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의혹이 제기된 대전 유성구의 한 유흥업소. 대전=이세형 기자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국정감사 한 번 치르는 데 총비용이 1억 원이나 들어야 하니 말이에요. 이 가운데 술값, 밥값으로만 2500만 원이 들었어요.”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정부출연 A 연구원의 B 씨는 23일 저녁 사석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호소했다. 전날 A 연구원을 비롯한 7개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를 받은 뒤였다. B 씨는 A 연구원에서 국감을 준비한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이어 “국민 세금이 이렇게 헛되이 쓰여서야 되겠느냐”라고도 말했다.
C 연구원에서 국감을 준비한 부서에 있었던 D 씨.
그는 22일 국회의원들이 저녁 식사를 한 음식점과 비용 등을 소상히 밝혔다. 이어 “국감을 위해 대전을 방문한 국회 관계자들이 술을 마신 뒤 여종업원들과 ‘2차’를 나갔다”는 말도 전했다.
본보가 확인한 결과 이들이 말한 음식점과 저녁 식사비용은 정확했다. 저녁 식사 후 대전 유성 시내의 여러 곳에서 술자리가 벌어진 것도 사실로 확인됐다.
그러나 ‘국감 향응’ 관련 본보 보도가 나간 26일부터 B 씨와 D 씨는 자신들의 말을 대부분 번복했다. 우선 연구원이 공식적인 해명에 나섰다.
이번 국감 준비를 주관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본보 보도 후 국감 당일의 술값과 밥값은 총 788만 원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국감 후 별도로 술자리를 한 일부 의원과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한 단란주점에서 마신 술값은 68만 원이며, 이 비용은 피감기관의 한 직원이 개인카드로 지불했다는 것.
이 기관 관계자는 “법인카드는 술값에 쓸 수 없다”며 “나중에 기관장 판공비 등에서 정산해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원 측이 공식적으로 밝힌 술값과 밥값은 당초 B 씨가 제보한 것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B 씨는 이날 기자에게 “생명공학연구원이 공식적으로 밝힌 금액이 맞다. 일부 사실을 잘못 파악했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또 “술값 밥값을 빼고 국감을 준비하기 위해 대략 1600만원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일부 국회 관계자의 ‘2차’를 제보했던 D 씨는 아예 전화도 받지 않았다. D 씨가 제보했던 이 내용은 취재진이 해당 술집의 위치를 파악하고, 당일 그 술집에서 벌어진 일을 파악하는 중요한 열쇠였다.
한편 국회 과기정위 소속 일부 의원의 향응 파문이 보도된 이날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은 하루 종일 사태를 파악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의원들이 ‘2차’를 나가지 않았을 경우 수행원이나 피감기관 관계자가 성 접대를 받았을 수도 있다며 진상 파악에 부심했다. 상급 부처인 과학기술부도 ‘사실 여부를 파악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피감기관장들은 이날 약속이라도 한 듯 “출장 중”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하루 종일 자리를 비웠다. 각 언론에서 전화 요청이 쏟아졌지만 거의 성사되지 않았다. 특히 당시 일부 의원과 단란주점에서 함께 술을 마신 피감기관장들은 사실 확인 자체를 거부하는 분위기였다.
이 가운데 E 씨는 25일 의원들과의 술자리에 참석했느냐는 본보 취재진의 질문에 “국감이 끝난 뒤 의원들과의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다른 지인들과 술을 마셨다”고 말했지만 하루 만인 26일 술자리에 참석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대전=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공무원 여비 규정::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등 공무를 위해 지방에 갈 때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규칙’의 적용을 받는다. 이 규칙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공무원 여비 규정’에 준해 매일 일비 2만 원과 식비 2만5000원을 여비로 받게 되며 숙박비는 실비로 정산한다. 보좌관들도 공무원 여비 규정에 따라 일비 2만 원, 식비 2만 원, 숙박비 3만 원을 지급받는다.
▲ 동영상 촬영 : 김동주 기자
▲ 동영상 촬영 : 김동주 기자
▲ 동영상 촬영 : 이종승 기자
▶dongA.com에 동영상
▼“의원 6, 7명 술마셔”→“국감 관계자는 없었다”▼
국정감사에 나섰던 국회의원과 피감기관 관계자의 술자리 합석을 처음 밝힌 대전 유성구의 단란주점 주인 A 씨는 26일 언론보도로 파문이 확산되자 “사실이 아니다”라며 종전 주장을 번복했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정감사 당일인) 22일 밤 술집에 4팀의 손님들이 있었지만 국감 관계자는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이전까지 그와 술집 종업원들은 3차례에 걸쳐 “국회의원들이 술을 마신 게 맞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그는 24일 밤 기자 신분을 감춘 채 손님처럼 찾아간 본보 취재진에게 “22일 밤 6, 7명의 국회의원과 박사님(피감기관 관계자로 추정한 듯) 등 10여 명이 왔었다”고 말했다.
당시 A 씨는 ‘국회의원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사회생활을 많이 한 편이어서 언론에 나오는 웬만한 의원들의 얼굴은 대충 안다”고 말했다.
그는 “22일 오후 9시경에 국회의원 6, 7명과 연구단지 관계자 등 10명이 찾아왔으며 20만 원짜리 양주를 6, 7병 시켜서 먹었다”고 덧붙였다. 후미진 곳에 있어 외부의 눈에 잘 띄지 않아 ‘높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하에 있는 이 술집은 국회의원들이 식사를 했던 S한정식집과 도보로 불과 1∼2분 거리. 골목길 안에 위치해 있다.
A 씨는 “당일 참석자들이 폭탄주를 많이 마셨고 기분이 상승해 대부분 ‘2차’를 가는 분위기였으나 나중에는 의원 2명만 갔다”고 덧붙였다.
이 집 남자종업원 B 씨도 인상착의까지 설명하며 “의원이라고 하는 두 분을 직접 모텔까지 모셔 드렸다”며 A 씨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A 씨는 25일 오후 또다시 찾은 취재진에게 “연구단지 기관장 등 모두 10명”이라며 “애초 ‘2차’를 나가기로 한 손님 중에는 연구단지 사람도 끼어 있었다”고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그는 종전의 태도를 바꿨다.
그는 “(본보 기자) 3명이 찾아와 ‘의원들이 22일 술을 마셨느냐’고 확인하기에 장소를 물색하러 온 줄 알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눈에 띄지 않고 편안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당시 의원들이 술을 마신 것처럼 말했다”고 덧붙였다.
부근 업소 관계자들은 “대전에 있는 각종 공사와 정부연구소 등 몇몇 기관 관계자들이 이곳을 단골로 이용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대전=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