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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8년 남아공 진실-화해委조사발표

입력 | 2007-10-29 03:08:00


연단에 선 흑인 여성은 장남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또박또박 읊었다. 아들이 우등생이었다고 소개할 땐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들과 이별한 ‘10년 전 그날 밤’을 말하는 대목부터 담담하던 말투가 떨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문을 뜯고 들이닥쳐 아들을 끌고 갔어요. 얼마 후 영안실로 오라는 연락이 왔죠. 총을 19발이나 맞아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분명 제 아들이었어요.”

며칠 뒤 그 연단엔 백인 경찰 3명이 나란히 섰다. “우린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흑인 학생들을 채석장으로 데려갔습니다. 한 명씩 나무에 거꾸로 매달고 땅바닥에 불을 피웠습니다. 머리카락이 타들어가자 비명을 지르더니 결국은 자백하더군요. 그들을 기관총으로 사살한 뒤 상부에는 저항했기 때문에 사살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연단에 선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의 청문회 자리에서였다. TRC는 백인정권에서 자행된 인권범죄 2만1000여 건의 피해신고를 받았고 가해자 6800여 명도 청문회에 자진 출두했다. 1996년부터 2년 3개월에 걸친 고백의 행진은 국영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TRC는 1998년 10월 29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장 데즈먼드 투투 주교는 “자고 있는 척하는 사람들을 깨우는 일은 고된 작업이었다”며 백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음을 시사했다.

“백인들을 위한 면죄부” “마녀사냥” 등 비판의 목소리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진상 규명을 통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가해자에게 반성의 기회를 줘 ‘흑백 화해’를 이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TRC의 성공은 백인들의 입을 열었기에 가능했다. TRC는 가해자가 과오를 인정하고 진실을 밝힐 경우 사면했다. 무고한 백인을 해친 흑인 저항조직에도 똑같이 책임을 물었다. TRC를 출범시킨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전 부인 위니 만델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같은 노력이 진실 해명의 열쇠를 쥔 백인들을 청문회장으로 이끌었다.

타인의 생명을 빼앗은 사람은 자기 내면의 인간애도 파괴당함으로써 희생자 못지않은 고통을 겪는다. TRC는 용서와 참회를 통해 상처를 주고받은 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진실만이 피해자들을 증오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그 과정이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