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네어리 워프’가 런던의 새로운 금융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세계적인 금융회사들도 속속 몰려들고 있다. 템스 강 너머로 보이는 캐네어리 워프 곳곳에 타워 크레인이 서 있어 한창 ‘건설 중’임을 보여 주고 있다. 런던=송평인 특파원
런던 ‘신금융 1번지’ 캐네어리 워프-특파원 현장르포
영국 런던의 ‘월가’로 불리는 새 금융중심지 캐네어리 워프는 전혀 런던 같지 않은 곳이다. 마치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가 파리 같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고층 빌딩들이 다투듯 하늘을 찌르고 시원한 도로가 직선으로 쭉쭉 뻗어 있다. 영국인들이 오히려 희한한 곳이 생겼다며 관광을 온다.
○ ‘런던시티’서 금융 중심 이동
HSBC 그룹은 2003년 본부를 런던의 옛 금융중심지인 ‘런던 시티’에서 캐네어리 워프로 옮겼다. 이 은행 아시아 전담 매니저(RM) 지레인트 존 씨는 25일 “‘런던 시티’에서는 직원들이 여러 건물에 흩어져 있어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HSBC가 투자은행 업무를 함께하면서 좁은 복도로 연결된 구식 건물이 아니라 트레이딩 플로어로 사용할 수 있는 넓고 열린 공간이 필요했다.
직원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보니 유리창 너머로 널찍한 트레이딩 플로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관리직원 마시모 씨는 “3개 층에 걸쳐 약 4500m²의 면적에 570명이 한꺼번에 일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클레이스도 2005년 ‘런던 시티’를 떠나 이곳으로 옮겨왔다.
뉴욕 월가에 본부가 있는 세계적 은행들도 유럽 본부를 캐네어리 워프에 두고 있다. 상업은행인 씨티그룹,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그렇고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 리만 브러더스가 그렇다. 시티에 남아있는 대형 금융회사는 메릴린치 정도다.
○ 통신사-로펌도 속속 자리잡아
금융회사만이 아니다. 세계적 통신사인 로이터가 2005년 본부를 이곳으로 옮겼다. 로이터가 일반 뉴스보다 금융정보 제공으로 훨씬 많은 돈을 버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 최대 로펌인 클리퍼드 챈스도 2003년부터 이곳에 본부를 뒀다. 각국의 인재가 몰려들어 영어로 대화하는 런던이 전 세계 고객에게 법률정보를 제공하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빌딩을 통째로 차지하는 큰 회사 외에도 크고 작은 많은 금융회사들이 속속 이곳에 몰려들어 둥지를 틀었다.
컨설팅 회사 KPMG와 증권회사 베어스턴스가 2009년 완공을 목표로 건물을 짓고 있는 등 캐네어리 워프는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 20세기 초의 영화 다시 찾아
한국 금융회사로는 ‘미래에셋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UK’가 처음으로 이곳에 문을 열었다. 이 회사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조세 제라르도 모랄레스 씨는 “뉴욕에 있으면 런던 시장을 보기 어렵지만 런던에 있으면 뉴욕 시장까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런던 주식시장이 끝나기 전에 뉴욕 주식시장이 문을 연다는 얘기다.
캐네어리 워프 배후 지역은 고급 주거지로 개발되고 있다. 런던에서 보기 힘든 맨해튼식 고층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다. 이 중 팬 페닌슐라 트윈 빌딩의 방 2개짜리 아파트는 분양가가 500만 파운드(약 93억 원)까지 치솟았다.
주거지가 아니다 보니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수많은 직장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몰리고 캐네어리 워프는 적막에 빠지곤 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상점과 식당들이 캠페인을 벌여 오후 8시까지 문을 여는 곳이 200여 곳으로 늘면서 밤 풍경도 더는 휑하지 않다.
캐네어리 워프만큼 극적인 변화를 겪은 장소도 드물다. 20세기 전반만 해도 영국에서 가장 붐비는 항구였으나 화물의 컨테이너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락해 1980년 문을 닫았다. 21세기 들어 금융 중심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런던=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