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은 끓더라도, 일단 말을 아끼자.’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 측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이회창 전 총재의 ‘대권 3수설’에 대한 방침을 30일 이같이 정했다.
이 후보는 이날 측근들에게 ‘이 전 총재가 직접 출마 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절대 자극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방호 사무총장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이 후보가 ‘걱정하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기조는 이 전 총재를 비판할 경우 득보다 손해가 더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
당 안팎에서 여전히 ‘총재님’으로 통하는 이 전 총재를 정조준하면 보수 색채가 강한 한나라당 지지층에게 ‘불경스럽다’ ‘버릇없다’는 인상을 줄 수 있고, 박근혜 전 대표 측과의 화학적 결합이 아직 요원한 상황에서 이 전 총재와의 또 다른 갈등은 이 후보의 ‘정치적 포용력’에 의문 부호를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후보 측은 당분간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명분을 쌓되 물 밑에서는 이 전 총재의 재출마 추진을 만류한다는 복안이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재출마 외에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 전 총재가 원하는 것은 들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런 ‘비 적극적’ 대응의 한 측면에는 이 전 총재의 출마가 현 구도를 크게 흔들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깔려 있다. 이 총장은 이날 “이 전 총재의 최근 지지율이 13%대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그의 출마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세력들의 역선택이 가미된 통계”라고 주장했다.
한편 대통합민주신당은 이 전 총재의 재출마설을 내심 반기면서 이 전 총재를 직접 겨냥하지 않고 있다. 이날 원내대표단 회의에서도 이 전 총재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정동영 대선 후보가 전날 KBS 토론회에서 “보수 진영의 압력이 거셀 것이기 때문에 이 전 총재가 출마하기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 것도, 오히려 이 전 총재 측을 자극해 출마를 부채질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전날부터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자택에서 칩거 중인 이 전 총재는 이날 오전 점심약속을 위해 잠시 외출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재출마설에 대해 “아직은 말씀드릴 게 없다. 앞으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