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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57년 도요타자동차 美진출

입력 | 2007-10-31 03:00:00


도요타자동차의 이사였던 도요다 에이지(豊田英二)가 미국 포드사를 방문한 건 1950년 7월이었다. 당시 포드의 하루 생산량은 8000대, 도요타는 겨우 40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꾸라지 양식업까지 검토했을 정도로 경영난을 겪던 도요타로선 세계 자동차 업계 2위였던 포드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미국의 자동차 시장에 충격을 받은 도요다 씨는 일본에서도 승용차 시대가 열릴 것을 확신했다. 실패를 거듭한 끝에 1955년 ‘크라운’을 내놓았다. 훗날 도요타자동차의 회장이 된 그는 자서전에서 “승용차라고 이름 붙이기에 어울리는 첫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친 김에 “미국에서도 팔아보자”고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크라운의 품질을 자신해서가 아니었다.

당시 미국 시장은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서서히 잠식하고 있었다. 전시(戰時)경제에 익숙해 있던 도요타자동차로선 조만간 미국에서 수입쿼터제가 실시될 것이라는 조바심이 일었다.

1957년 10월 31일 드디어 도요타자동차 미국 판매지사(도요타모터 세일즈 USA)가 설립됐다. 선적부터 하고 봤지만 결과는 대참패였다. 크라운의 유일한 장점은 GM의 동급(1500cc) 차량보다 값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뿐이었다. 1900달러짜리 크라운은 걸핏하면 고속도로에서 멈춰 섰다. 1958년까지 도요타가 미국에 판 크라운은 287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때마침 1973년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배기량이 낮은 저가(低價)의 일본차를 찾는 미국인들이 늘기 시작했다.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서 연구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GM도 도요타에 손을 내밀었다. 1984년 GM과 현지 합작사를 차렸고, 5년 뒤에는 고급형 브랜드인 ‘렉서스’를 출시했다. ‘싸구려 일본차’가 유럽차에 견줄 수 있는 고급 승용차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도요타는 올해 판매 목표치를 940만 대 이상으로 잡았다. 계획대로라면 GM의 목표치 928만5000대를 추월한다. 도요타가 미국에 진출한 지 50년 만에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로 등극하는 셈이다.

1995년 회장직에서 물러나 최고고문으로 있는 도요다 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앞을 향해 걸어가지 못하는 순간 그때가 마지막이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