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8일 서울 중구 삼일로 중앙시네마 3관에 문을 연다. 156석짜리 작은 영화관.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저 영화가 좋아서’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보여 줄 곳’이 생겼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다. 한국의 독립영화인 3인이 전용관 설립을 기뻐하며 한국에서 독립영화인으로 산다는 것, 독립영화의 의미에 대해 얘기했다. 누구는 이 전용관 설립을 위해 7년 세월을 보냈고, 누구는 이곳에 자신의 영화가 걸릴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첫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8일 개관… ‘독립 투사’ 3인의 소회
7년 만의 결실… “더 나은 내일 위해 뛰어”
“도대체 독립영화 전용관이 왜 필요해요. 영화제에서 하면 되는데.” 수천 번쯤 받은 질문이다. 인디스페이스의 운영을 맡은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 배급지원센터 원승환(34) 소장은 이럴 때마다 준비된 답변을 녹음기처럼 재생한다. 1년에 장편 30여 편, 단편 500여 편의 독립영화가 제작되지만 개봉하는 건 극소수고, 영화제는 독립영화의 배급구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안 되며 관객은 다양한 영화를 볼 권리가 있다고.
7년 만이다. 한독협이 전용관 건립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게 2000년, 이어 2005년에 결정이 났고 극장을 찾는 데 2년이 걸렸다.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다 합쳐도 국내 시장점유율은 2.9%. 일본의 10%, 프랑스의 34%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그렇지만 작년 대구와 광주의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에는 관객이 재작년보다 200% 증가했다. 그는 최근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독립영화 ‘우리 학교’나 아일랜드 독립영화 ‘원스’의 성공에 주목하며 지금 우뚝 선 봉준호나 류승완 장윤현 이재용 감독도 모두 독립단편영화로 각광받으며 시작했음을 알려 주고 싶다.
대구 출신인 그는 10년 전부터 대구에서 한국 독립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해 왔다. ‘이렇게 좋은 영화가 많은데 왜 영화를 걸 곳이 없을까’가 그의 고민이었다. 왜 그렇게 열심이냐고 물으면 그는 그냥 “한독협에서 월급 받아서”라며 웃는다. 그러나 속으로는 생각한다. 인디스페이스 개관을 알리는 포스터의 문구인 ‘더 나은 내일’을. 주류 미디어가 외면하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예술이 인간을 윤택하게 한다는 믿음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는 독립영화의 존재가 우리에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줄 거라고.
대출 받아 영화 촬영 왜… “내 운명이니까”
“네이버에 왜 선생님 얼굴이 나와요?” “선생님, 다음에는 정우성 나오는 거 좀 찍으세요.” 이럴 때마다 교사 안슬기(37) 씨, 혹은 안슬기 감독은 그냥 웃는다.
작년까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당곡고 수학 교사였던 안 감독은 올해부터 고교 3년 과정의 직업 교육을 하는 서울산업정보학교에서 영화영상코스를 가르친다. 첫 장편 ‘다섯은 너무 많아’로 호평 받은 그의 두 번째 작품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서 상영된 ‘나의 노래는’. 인디스페이스에서 22일부터 열리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다.
안 감독은 방학 때만 영화를 촬영한다. 이번에도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왕십리 모텔에서 합숙하며 15일간 13회 촬영으로 완성했다. 보통 독립영화 감독들은 대출을 받고 카드 빚을 내 가며 영화를 만든다. 안 감독도 은행에서 3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그나마 교사라는 직업 때문에 대출이 잘된다. 월급을 받아 마이너스 통장을 메워 가며, 같은 교사인 아내에게 미안해하며 영화를 만들지만 다른 감독들에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다.
그래도 촬영 횟수가 늘어날까 봐 마음에 차지 않아도 OK 사인을 내고, 회식 한 번 못 하면서 찍는다. 계속하는 이유를 자신도 잘 모른다. 그냥 찍고 나면 또 찍고 싶어 못 참겠다. 영화는 그에게 운명같은 것이니까.
“내 인생의 돌파구… 오래 살아 남겠다”
인디스페이스 개관 영화제 개막작 ‘은하해방전선’의 배우 임지규(29)는 독립영화계의 스타. 화제작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의 주연도 그다. 친구들은 그에게 ‘남들이 안 알아주는 스타’라고 농담한다. ‘거침없이 하이킥’에 2분 나왔을 땐 다들 ‘우와’ 하더니….
고신대 수학과를 다니다가 제대 후 그만뒀다. 지금은 조그만 가게를 하시지만 당시 노점상을 하시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공부는 사치였다. 서울로 올라와 우연히 ‘핑거프린트’라는 단편 영화에 나오게 됐다. 독립영화계에 이름을 알렸고 연기의 매력도 느끼게 됐다.
그에게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차이는 ‘상업영화를 찍으면 추울 때 더 따뜻한 이불과 난로를 주는 것’ 정도다. 어차피 연기의 본질은 같다.
솔직한 그는 마치 남다른 의식이 있어서 독립영화를 선택한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상업영화가 아직은 자신을 선택해 주지 않아 들어선 길. 여전히 촬영이 없을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음식 배달과 커피숍 매니저를 거쳐 지금은 사진작가 어시스트다. 하지만 독립영화는 그에게 인생의 돌파구가 됐다. 돈이 안 돼도, 관객이 없어도 그에게 ‘배우’라는 명찰을 달아 줬다. ‘처음부터 단맛만 보지 않아서’ 오히려 더 오래 살아남을 거란다.
독립영화는 효도까지 하게 해 줬다. ‘저수지…’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부모님이 오셨다. 어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과묵한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개봉(10월 25일) 다음 날, 아버지는 부산 서면의 극장에서 여동생과 함께 ‘단 두 명의 관객’으로서 영화를 또 봤다. 그날 밤,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전화를 했다. “이제 무슨 얘긴지 좀 알겠다… 지규야, 우리 아들…. 아버지… 기분 좋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 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제작비 1억 미만 영화 주로 상영
‘인디스페이스’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설립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 배급지원센터가 운영을 맡는다. 1년 예산은 약 4억 원. 1년 52주 중 독립영화제와 개봉 못한 옛날 독립영화를 위한 기획전을 제외한 약 40주 동안 신작 독립영화를 상영한다. 관객이 들지 않아도 최소 2주의 상영기간을 보장한다. 이 경우 1년에 20편 정도 장편 독립영화를 개봉할 수 있다. 주로 제작비 1억 원 미만의 초저예산 영화가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 개관 기념으로 8∼21일 개관 영화제 ‘毒(독)립영화’가 열려 한국 독립영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전망하는 53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또 22∼30일 서울독립영화제가 열린다.
:독립영화: 미국에서는 메이저 스튜디오가 만들지 않는 모든 영화를 독립영화로 본다. 유럽에서는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거의 같은 개념으로 본다. 한국 독립영화는 1980년대 군사정권의 검열과 통제 속에 있던 충무로 영화에 저항하기 위해 탄생됐기 때문에 정치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었다. 최근엔 ‘충무로의 기존 시스템 밖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비주류 영화’를 독립영화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국내외 비주류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은 서울에 10여 곳이 있다(표 참조).
서울 시내의 독립 예술영화 상영관극장전화번호인디스페이스02-778-0367무비 꼴라쥬1544-1222문화플래닛 상상마당02-330-6237∼9CQN02-774-9002
서울아트시네마02-741-9782필름포럼02-764-6236스폰지하우스02-2285-2011(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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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