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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3년 마스트리히트 조약 발효

입력 | 2007-11-01 03:03:00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

개별 국가가 고유한 특성을 지키면서 초국가적 공동체를 만들자는 구상은 1849년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처음 내놓았다.

유럽 통합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의 제안이 나오면서부터.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의 중심이었던 유럽의 일류국가들은 당시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주변국가로 전락했다. 세계무대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한 미국과 소련에 맞서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뭉치는 도리밖에 없었다.

개별 국가 간에 얽힌 과거사와 감정적 앙금을 청산하기도 전이었지만 유럽은 ‘미래를 생각하자’는 실용주의에 기회를 주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기독교문명, 근대 복지국가라는 공통분모도 통합을 도왔다.

통합을 향한 첫걸음은 1951년 파리조약에 의해 창설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였다. 전략물자인 석탄과 철강을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 관리하자는 취지에서 구성됐고 여기에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도 참여했다.

1957년에는 로마조약을 통해 유럽경제공동체(EEC)가, 1967년에는 유럽공동체(EC)가 창설돼 유럽은 단일 경제공동체를 이뤘다.

유럽 통합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전기는 1993년 11월 1일 발효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다. 유럽은 경제공동체 EC에서 경제 정치 공동체인 유럽연합(EU)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 이를 토대로 단일 통화 유로(euro)가 도입됐고 유럽중앙은행(ECB)이 창설됐다. 개별 국가들은 정치적 권한의 상당 부분을 통합 기구에 넘겨줬다.

12개 회원국에 인구 3억4500만 명, 세계 교역의 40%를 차지하게 된 유럽 단일 시장은 미국 일본과 세계 경제의 3강 구조를 형성했다. 1990년 통일된 독일도 EU의 울타리에 묶어 놓음으로써 유럽의 잠재적 위협을 없앨 수 있었다.

오늘날 EU는 27개 회원국에 인구 4억8700만 명으로 덩치가 불어났다. 세계무대에서의 발언권도 그만큼 커졌다. 지난달 18일에는 EU 정상들이 대통령과 외교총책직 신설을 골자로 하는 개정조약에 서명하면서 7년간 끌어 온 헌법 논란을 매듭짓고 더욱 견고한 정치 공동체로 다가섰다.

EU는 독특한 실험장이다. 통합으로 가는 길목마다 발목을 잡아 온 민족주의를 떨쳐 내고 초국가성(supranationality)을 실현해 낼지 주목된다. 개인의 자유와 발전을 강조하는 아메리칸 드림에 맞서 연대와 삶의 질을 강조하는 ‘유러피안 드림’의 시대를 열어 갈지도 관심거리다. 유럽통합이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점도 이 실험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