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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은 죽어서도 증거를 남긴다”

입력 | 2007-11-03 03:22:00


파손시킨 노트북 하드디스크 잔해 분석

검찰 ‘혼인 빙자 간음’ 채팅 증거 찾아내

검찰이 신빙성 있는 진술을 확보하더라도 직접적인 물증이 없어 사법처리에 애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대검찰청 디지털수사담당관실에서 찾은 ‘디지털 증거’가 수사팀에는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듯 반갑다.

대검찰청 디지털수사담당관실 소속 디스크분석팀에서 근무하는 수사관 최영주(여) 씨는 2일 검찰 전자신문 뉴스프로스에 실은 ‘작은 조각에서 찾아낸 0과 1 사이의 진실’이라는 글을 통해 디지털 증거 수집 과정 및 어려움을 실제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2006년 전주지검에 혼인빙자 간음 고소사건이 접수됐다. 고소인(여)의 진술은 믿을 만했지만 피고소인은 부인했고 물증은 전혀 없었다.

수사팀은 “피고소인과 메신저를 이용해 채팅을 했다”는 고소인의 진술에 착안해 피고소인의 노트북 컴퓨터를 분석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피고소인은 모니터가 떨어져 나가고 키보드 자판이 깨질 만큼 노트북을 파손시켜 수사팀에 제출했다. 하드디스크도 파손된 상태였다.

이 컴퓨터를 넘겨받은 최 씨는 파손된 하드디스크를 수리할 수 있는 ‘청정 복구실’에서 하드디스크를 분해한 뒤 기존의 기판을 제거하고 새 것으로 교체해 하드디스크를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하드디스크에서 ‘채팅 파일’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1차 검색을 했지만 파일은 발견되지 않았고 최 씨는 꼬박 이틀에 걸쳐 하드디스크에서 실제 사용되지 않는 부분을 포함한 전 영역을 대상으로 정밀 스캔을 실시했다.

마침내 발견된 채팅 파일에는 피고소인이 고소인에게 결혼을 약속한 내용, 두 사람이 과거에 성관계를 가졌음을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결국 피고소인은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최 씨는 “결정적인 수사 단서가 들어 있는 휴대용 저장장치 USB 등을 은닉하거나 파손하는 것이 종이 서류보다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과거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에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