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만의 야한 영화제, ‘핑크영화제’의 포스터. 7일까지 씨너스 이수점에서 열린다. 사진 제공 씨너스
“솔직히 현장에서 여배우들이 벗고 있을 때 남자로서 ‘느끼게’ 된 적은 없나요?”
“이런 영화를 찍으려면 경험이 많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신가요?”
이쯤 되면 에로 영화를 15편이나 찍은 우리의 ‘봉 감독’도 진땀이 날 만하다. 물론 봉준호가 아니라 봉만대 감독이다. 에로 영화계에서 이름을 날리다 충무로에 데뷔해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신데렐라’ 등을 만든 바로 그 감독이다.
토요일인 3일 오후, 멀티플렉스 ‘씨너스’ 이수점에서 열린 여성 관객과 봉 감독의 ‘핑크 토크’ 현장. 7일까지 계속되는 야한 영화제 ‘핑크영화제’의 부대행사다. 일본의 유명 핑크영화 감독 메이케 미쓰루 씨도 함께했다. 두 감독은 위 질문에 서로 먼저 이야기하라고 떠밀었다. 봉 감독은 “촬영에만 집중하니까 그럴 틈이 없다”며 “나보다 남자 배우가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메이케 감독은 “일어서지 못할 상황이 된 적이 있었고 괜히 심각하게 고민하는 척하며 앉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두 감독 모두 현장에서 ‘추리닝’은 절대 입지 않는다고. 봉 감독은 아내와 함께 정사 장면을 ‘실습’해 본다는 말도 했다.
핑크영화는 일본의 독특한 독립영화 장르다. 3000만 원의 저예산에 3일간의 촬영 기간, 15분에 한 번꼴로 정사 장면이 나와야 핑크영화란다. 우리의 에로 비디오와 비슷하지만 극장 개봉용이며 ‘쉘 위 댄스’의 스오 마사유키 등 재능 있는 많은 감독이 핑크영화로 시작했다.
이날 일본 핑크영화계의 대모인 아사쿠라 다이스케 PD도 나왔다. 쇼트커트가 인상적인 67세의 멋진 할머니였다. 아사쿠라 다이스케는 남자 이름이다. 핑크영화계에서 일하려니 여자 이름으론 힘들어서 그렇게 했단다. ‘아침부터 너무 좋아라(아사카라 다이스키)’는 뜻을 담았다는 것. 으흑.
처음엔 한국 여성들이 이런 행사에서 과연 질문을 할까 생각했는데, 여성들은 진지했고 궁금한 것도 많아 시간이 모자랐다. 여성 관객에게만 허용된 이 영화제의 좌석 점유율은 80% 이상으로 꽤 인기를 끌었다. 억눌려 있던 여성의 욕구는 분출하는데 아직도 많은 영화들은 남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성만 얘기한다. 이날 한 여성은 핑크영화에서 여성의 모습이 ‘건드리기만 하면 흥분하는 존재’로 묘사되는 것을 비난했다.
한바탕 웃고, 약간 붉어진 얼굴로 나와선 영화제가 기획한 ‘춘화 전시회’를 둘러봤는데 이게 이날의 압권이었다. 김홍도 신윤복의 춘화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물론 후대 사람들이 그린 위작이라는 설이 많다) 복사된 그림이나마 본 것은 처음. 흔히 말하는 ‘스리섬’, 즉 여자 2명과 남자 1명의 적나라한 성행위가 묘사된 그림, 한 노부부가 하려고 하는데 잘 안돼서 안타까운 포즈를 취한 그림도 있었다. 그 수위가 영화로 말하면 완전 포르노였다.
으흑, 충격. 나쁘다는 게 아니다. 역시 남자나 여자나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인가 보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