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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인생 훈수]윤태은씨가 아들 윤준상 6단에게

입력 | 2007-11-08 03:02:00

프로기사 윤준상 국수(왼쪽)의 아버지 윤태은 씨는 7일 “준상이가 평소 믿음직스럽게 자기 일을 처리해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며 “항상 도전하는 자세로 기사 생활을 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스무살 나이에 ‘국수’가 부담스럽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히 여겨라

1일 네가 국수전 도전기 1국을 두는 것을 인터넷으로 지켜봤다. 네가 주요 대국을 두는 날이면 근무시간에도 인터넷에 저절로 손이 간다. 초반에 팽팽하게 맞서다가 갑자기 네가 허물어졌지. 5급인 내가 봐도 상대인 이세돌 9단이 강하긴 하더라.

그날 집에 온 네게 물었지. 1인자를 만나 힘들지 않으냐고. 너는 밝은 표정으로 “아뇨, 자신 있어요. 센 기사와 둬야 재미있고 실력도 늘죠”라고 말했지.

지난해 국수전에서 이창호 9단과 도전기를 벌일 때도 네가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대가 누구든 주눅 들지 않는 네 태도가 대견스러웠다.

2007년 3월 50기 국수전을 생애 첫 타이틀로 획득하고서 많은 사람의 축하에 해맑게 웃던 너의 얼굴을 아빠는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그러나 영광 뒤에 그늘도 있었지. 너는 오히려 타이틀을 따고 나서 힘들어했지.

‘국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좋은 성적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너에게는 큰 부담이었던 것 같더라. 특히 국수전 직후 열린 왕위전 도전기에서 이창호 9단에게 2-3으로 지고 난 뒤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웠다. 술을 먹기도 하고 반항하는 면도 보였고…. 하지만 내가 함부로 얘기할 수 없었다. 젊은 나이에 지나치게 승승장구하는 것보다 좌절도 겪어 보고 방황도 해 보는 것이 네 앞길에 낫다고 생각했지. 또 네가 “스스로 이겨내겠다. 시간적인 여유를 달라”고 말한 것도 믿었다. 최근 열심히 헬스장에 나가 몸을 가꾸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서서히 패배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고집과 도전 근성이 대단해서 뭘 해도 잘할 수 있겠다고 믿었다. 6세 때 관악산 올랐던 거 기억나니. 비가 너무 많이 내려 8분 능선에서 내려가자고 했지만 너는 ‘정상까지 오르기로 약속했으니 꼭 올라가야 한다’고 했지. 고생 끝에 정상까지 올라갔지. 그 여파로 너는 온몸에 반점이 생기고 탈진해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됐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고집불통이던 네게 바둑을 가르쳤더니 산만함과 투정이 없어지고 의욕과 차분함이 넘치더구나. 네 모습에서 기쁨을 느꼈단다. 너는 특유의 근성과 고집으로 실력에 비해 성적이 항상 앞섰지.

중학교 2학년 가을 입단대회 본선에서 여덟 번 도전 끝에 힘겹게 프로에 입단했는데도 네가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때 성숙해진 너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었단다.

네가 좋아서 시작한 바둑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만들어진 승자보다 노력하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승부사가 되기 바란다. 바둑은 겉으로는 상대와의 싸움이지만 실제론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스무 살 성인으로서 너의 삶이 후회 없도록 몸과 마음을 열심히 갈고닦아 세계적인 ‘윤 국수’가 되기를 바란다. 힘들고 어려울 때 너를 믿는 가족이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마지막으로 이번 국수전에서 좋은 모습 보여 줄 걸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