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와 전쟁, 성장과 독재의 시대를 살아오며 독립운동과 친일, 좌와 우, 독재와 민주화 운동이 격렬하게 대립했던 나라에서 모두 공감하는 위인전을 쓰기란 힘들다. 생존 인물이라면 더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포스코 박태준(80) 명예회장은 예외다. 학자와 문인들이 앞 다투어 평전을 내고 있다. 1997년 재미 한국 경영학자가 미국에서 처음 펴낸 데 이어 2004년엔 소설가 이대환 씨가 ‘세계 최고의 철강인’을 썼다. 최근엔 소설가 조정래 씨가 위인전으로 펴냈다.
▷8일 박 회장의 팔순 잔치에서 조 씨는 “현존 인물임에도 박 회장을 안중근, 한용운, 김구, 신채호와 같은 반열에 올려 5인의 위인전을 쓰게 됐다. 박 회장이 과거 삶에도 오류가 없었지만 앞으로 바람만 피우시지 않으면 없을 것(웃음)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진보 계열의 작가로 분류된다. 박 회장은 보수 진보로부터 동시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그제 팔순 행사에는 대선 출사표를 낸 여야 후보들이 함께 참석해 ‘위대한 기업가 정신’을 칭송했다.
▷포스코의 시작은 초라했지만 끝은 창대했다. 1968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의 뜻에 따라 39명으로 출범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박 회장은 중국 덩샤오핑이 “가장 수입하고 싶은 해외 인물”이라며 탐을 냈을 정도다.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전쟁과 빈곤을 겪은 박 회장은 군인 기업인 정치인이라는 세 직업을 거쳤지만 정치는 그에게 오욕만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철강인 박태준의 신화에 흠집을 낼 수는 없다.
▷1960년대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래 박 회장 같은 기업인들이 묵묵히 땀을 흘린 덕에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대선에 출마한 한 인사는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하지만 국가의 기반이 흔들리면 경제인들 제대로 될 리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가 허약한 나라는 국가 안보를 뒷받침하기도 어렵다. 살아 있는 영웅의 삶을 보면서 현란한 말잔치 대신에 진정한 지도자의 길을 새겼으면 좋겠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