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을 어떻게 공부할지, 또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하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이지논술 홈페이지(easynonsul.com)의 ‘논술 상담실’ 게시판에 질문을 올려 주시면 논술 전문가 박정하 교수가 일부를 선정해 상세하고 친절하게 답변해 드립니다.》
‘게임중독 해결될 수 있나’에 ‘해결해야 한다’식의 글 많은데…
논제의 차원 제대로 파악 못하면 ‘겉도는 답안’
[질문]
논제의 유형에는 △개념 △사실 △가치 △정책의 4가지가 있다고 하셨는데, 각각에 해당하는 논제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안락사, 체벌 등을 예로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최승후·교사)
[답변]
논술 문제의 논제는 △개념 △사실 △가치 △정책(실천) 중 한 가지 차원을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체벌을 교육현장에 도입해야 하는가’라는 논제는 어떤 차원의 문제일까요? 체벌 제도 도입 여부를 문제 삼는 것이므로 정책(실천) 차원의 문제입니다. 반면에 ‘체벌이 정당한가’하는 문제는 체벌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문제이므로 가치 차원의 문제입니다. ‘체벌이 효과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실제 효과 여부를 따지는 것이니 사실 차원의 문제입니다. ‘어디까지가 체벌인가’ 하는 문제는 ‘체벌’이란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를 문제 삼는 것이므로 개념 차원의 문제입니다.
똑같이 체벌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물음들은 다른 문제들입니다. 물론 서로 관련을 맺을 수는 있습니다. ‘체벌이 정당하다’는 가치 차원의 논의를 근거로 체벌을 도입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고, ‘체벌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 차원의 논의를 근거로 체벌 도입을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관련 맺을 수 있다고 해서 같은 차원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안락사도 좋은 예입니다. ‘안락사가 정당한가’ 하는 문제와 ‘안락사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는 다른 차원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가치 차원입니다. 안락사가 옳은 행위인지 묻는 것이지요. 둘째 문제는 정책(실천) 차원입니다. 만일 정당성을 법적 정당성으로 좁게 정의한다면 두 문제는 유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정당성은 법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도덕적 윤리적 차원을 포함하기 때문에 둘은 같은 문제로 볼 수 없습니다.
두 문제가 같은 차원인지 아닌지는 다음과 같은 대답이 가능한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안락사가 정당하긴 하지만 법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이 대답은 첫 문제에 대해서는 긍정의 답을, 둘째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의 답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견해는 가능하며,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법적 인정 문제는 정책(실천) 차원의 문제다 보니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안락사가 정당하긴 하지만, 법으로 인정할 경우 실제로는 정당한 안락사 외에 안락사를 빙자한 살인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이를 방지할 만한 적절한 대책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락사가 정당하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안락사 자체는 정당하지만 어떤 환자가 안락사를 정말 원하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분명하지 않다면 역시 안락사를 법적으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가치 차원과 정책(실천) 차원이 엇갈리는 경우는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필요악’이라는 개념이 있지요. 이 말의 의미 중 하나는, 가치 차원에서는 정당한 것이 아니지만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현실에서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같은 소재를 다룰지라도 네 차원의 물음은 사실 다른 물음이므로 차원을 혼동해서 답한다면 엉뚱한 대답이 되어 논점일탈의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물음에 맞는 답을 하는 것은 언어생활의 기본입니다. “그 아이는 착하니”라고 물어 보았는데 “그 아이는 똑똑해”라고 답하면 방향이 어긋난 대답입니다. 또 “너 시험 잘 쳤니”라고 물어봤는데 “열심히 쳤습니다”라고 답하면 적절한 대답이 아니지요. 시험의 결과를 물어봤는데 시험 친 과정에 대해 답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했지만 잘 치지는 못했다”라고 답하면 초점에 맞는 답을 한 셈입니다. 논술 문제에서도 이런 엉뚱한 대답을 하지 않도록 어떤 문제를 어떤 차원에서 다루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여 접근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많이 틀리는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게임 중독처럼 최근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정보사회가 진행되면 해결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차원의 물음일까요? 이 물음은 사실 차원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대답은 “해결될 수 있다” 혹은 “없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물음에 대하여 “해결 해야만 한다”고 답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 답은 가치 차원의 답입니다. 결국 방향이 어긋난 답인 것이지요.
교사가 논술 문제를 출제할 할 때나 토론 주제를 줄 때도 차원을 정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안락사에 대해 찬성인지 반대인지만 묻는다면, 어떤 학생은 정당성 문제를 논의하고 어떤 학생은 정책(실천) 차원을 논해서 토론이 겉돌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소재를 어느 차원에서 다룰 것인지 분명히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때때로 일부러 차원을 규정하지 않고 논술 문제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수한 학생은 스스로 차원을 구분해서 논의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할당제에 대해 찬성인가, 반대인가’를 물어 보면 우수한 학생은 “원칙적으로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존재하는 심각한 양성차별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 우대조치로서 일정 기간 도입해야 한다”고 답합니다. 이 경우 가치 차원과 정책(실천) 차원을 스스로 나누어 접근했기 때문에 우수한 답변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