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서쪽 바실리 섬 신항만 공사 현장. 핀란드 만을 매립하는 장면이 보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정위용 특파원
서구 사회 향한 문, 서구 자본 유혹하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문화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개발 열기를 힘차게 뿜어내고 있다. 1703년 건설 당시 ‘서구를 향한 창’으로 불렸던 이 도시는 이제 ‘대양으로 뻗어 가는 러시아의 관문’으로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특히 최근의 고유가에 힘입어 쏟아져 들어오는 오일 머니의 최대 수혜 지역으로 떠올랐다.》
고유가 지속 힘입어 ‘오일머니’ 최대 수혜지로 떠올라
초고층 빌딩 쑥쑥… 문화도시 속에 새 인공도시 건설
1년 새 집값 두배 상승… 中-日도 주거-공업단지 투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개발 중”
요즘 상트페테르부르크 서쪽 바실리 섬에는 부동산 투자를 목적으로 찾아오는 단체 관광객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이 섬의 앞바다인 핀란드 만에서는 매립 공사가 한창이다. 바다를 매립해 한국 여의도의 절반 크기로 인공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작업이다. 신도시에는 300m 높이의 고층 빌딩과 7만여 명이 거주할 주택 단지를 건설할 예정이다.
이 섬에 문을 연 ‘파르크인’ 호텔에는 유럽과 러시아에서 예비 투자자가 몰려들고 있다. 호텔 지배인은 “호텔에 방을 잡아 놓고 바실리 섬 개발 정보를 담은 책자를 객실로 보내 달라는 손님이 너무 많아 시청에 ‘책자를 트럭에 실어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인공 신도시 옆에는 33만 m²(약 10만 평) 규모의 새 항구도 들어선다.
러시아 정부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항만 특구’에 포함시켜 이곳에서 반출 반입되는 물자에 세금 혜택을 주기로 했다.
교민 이대식 씨는 “외부에서 몰려든 투자자들이 주변 아파트와 상가 가격을 최근 1년 사이 두 배 이상 올려 놓았다”며 “전망 좋은 아파트는 m²당 5000달러 이상으로 올라 모스크바 수준에 근접했다”고 전했다.
‘오일 머니’가 뒷받침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변신은 시내 도심에 늘어나는 현대식 고층 빌딩에서도 확연히 실감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회사인 러시아 가스프롬은 네바 강변 스몰니 성당 옆 66만 m²(약 20만 평)의 터로 본사를 이전할 계획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는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문화도시로서의 명성이 훼손된다’는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스프롬이 이곳에 높이 320m의 초고층 건물을 짓는 것을 승인할 계획이다.
○몰려드는 외국 자본
5년 전만 해도 모스크바가 아닌 지방 도시의 개발 계획에 대해서는 일단 불신하는 투자자가 많았다. 지방 정부가 자금 여력이 많지 않은데도 계획만 남발한다는 불만이 높았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러시아 정부가 2004년 4월 유가 하락에 대비해 석유 수출 후 남은 돈으로 적립한 ‘안정화 펀드’는 올해 11월 1일 현재 1476억 달러(약 134조3000억 원)로 불어났다. 특히 지난 1년 동안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오일 머니의 힘으로 러시아는 2014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했고 낙후한 지방에도 투자 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
이같이 변화하는 투자 환경에 따라 외국 자본들도 속속 몰려들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개발 프로젝트에도 외국 자본이 다수 참여했다. 바실리 섬의 신도시 개발은 미국 건축회사 젠슬러가 주도하고 있다. 유럽 최대 쇼핑센터가 될 ‘넵스키 칼리제이’의 건설은 이탈리아의 마르게리 그룹이 이끌고 있다.
네바 강 하저에 건설할 터널 공사 대금의 3분의 2도 외국 자본으로 채워졌다.
○“도심을 ‘러시아의 맨해튼’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라는 뜻에서 ‘페테르 마피아’로 불리는 현 크렘린 핵심층은 모스크바 건설 경기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투자의 물꼬를 지방으로 돌리고 있다.
이에 따라 상트페테르부르크 투자 열기는 외곽 지역인 레닌그라드 주 일대로 미치고 있다.
중국 상하이(上海) 자본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서남쪽 외곽에 ‘발트 해의 진주’라는 복합주거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시는 도시 남쪽 외곽지역에 GM자동차 공장과 정보기술(IT) 특구인 테크노파크, 서북쪽 외곽에 닛산자동차 공장 건설을 각각 추진하고 있으며 도심과 외곽지역을 잇는 고속 경전철도 연결할 계획이다.
푸틴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은 “2010년까지 시 도심은 러시아의 맨해튼으로, 외곽은 산업의 거점으로 키울 것”이라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