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론조사 단일화 후유증
갤럽 등 메이저업체 참여 거부 조사 신뢰-공정성 도마에 올라
5년 전인 2002년 11월 15일 당시 민주당 노무현 대선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선 후보 측은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했다.
그러나 양측은 여론조사 방식을 둘러싸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질문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서로 간의 이해가 엇갈리기 때문이었다.
당시 여론조사의 신뢰성과 공정성도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코리아리서치센터(KRC), 한국갤럽, TN소프레스, 미디어리서치 등 메이저 여론조사업체들은 아예 조사 요청을 거부했다. 양측은 어렵사리 참여 요청에 응한 두 기관의 조사결과를 갖고 세계 선거사에 유례없이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단일 후보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정당정치와 직접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 변칙이라는 비판도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여론조사 결과가 25일 새벽 발표되자 국민통합21 자원봉사자 50여 명은 여론조사 무효와 정 후보의 ‘범국민후보 추대’를 요구하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 9층 사무실을 점거한 채 철야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성명을 내고 “무응답이 0%로 나오는 등 의혹이 많은 이번 조사는 민주당과 우리 당 내부에 침투한 내통자들이 만들어낸 대국민 기만극”이라며 △검증실사단의 재조사 △무효화 선언 △정 후보 후보등록을 요구했다.
정 후보가 ‘정책공조’ 협의를 요구하며 노 후보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급조된 여론조사 단일화의 후유증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 후보는 지원유세에 나섰지만 대선을 하루 앞둔 12월 18일 저녁 결국 노 후보의 ‘한미동맹’ 경시 발언 등을 이유로 공조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