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11월 13일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 법원. 덱스터 애버뉴 침례교회의 마틴 루서 킹 목사는 흑인들의 버스 안 타기 운동을 독려한 혐의로 재판에 출석했다. 그날 정오 잠시 휴정 중이던 법정에선 동요가 일었다. 원고 측 경찰청장과 시장이 변호사와 함께 법정 뒤의 방으로 들어가 얘기를 나눴고 기자들이 연방 그 방을 드나들었다.
잠시 후 킹 목사는 미 연방 대법원에서 버스 내 흑인과 백인이 따로 좌석에 앉도록 한 앨라배마 주 법률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1년 가까이 걸친 ‘버스 안 타기’ 투쟁이 승리를 거둔 순간이었다.
1년 전인 1955년 12월 1일 로사 파크스(당시 42세)는 버스에 탄 뒤 백인 전용 좌석에 앉았다.
버스 운전사는 백인 남성이 차에 오르자 로사에게 자리를 내주고 뒤로 가라고 말했지만 로사는 이를 거부했다. 로사는 버스 운전사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돼 ‘버스 내 흑백 분리’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일요일인 12월 4일 킹 목사의 주도로 각 교회에서는 다음 날로 예정된 로사의 공판 일에 버스 안 타기 운동을 벌이자는 인쇄물을 나눠 줬다.
당초 얼마나 참여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버스 안 타기’ 운동은 성공을 거뒀다. 전체 승객의 75%를 차지하는 흑인의 90%가 버스를 타지 않았다. 흑인들은 이날 걷거나 카풀을 하거나 심지어 당나귀를 타고 출근하기도 했다.
버스 안 타기 운동은 들불처럼 번져 버스 회사의 수입은 65%나 줄었고 킹 목사는 보이콧 금지 법률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386달러의 벌금을 내지 못하면 386일 동안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후 1년여 흑인들의 투쟁 끝에 ‘버스 내 흑백 분리’법에는 위헌 판결이 내려졌고 킹 목사는 흑인 민권운동의 선구자로 떠올랐다. 킹 목사가 1956년 12월 20일 ‘버스 안 타기’ 투쟁을 끝마치면서 한 연설은 명문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1년간의 비폭력 투쟁 속에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억압해 왔던 그들의 처지도 생각해 봅시다. 그들도 법원의 명령에 새롭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상호 이해의 자세로 흑인과 백인을 단합시키기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감정이 격해지거나 폭력을 써선 안 됩니다. 버스를 타게 되면 백인에게 호의적 태도로 그들의 적개심을 친근감으로 바꿔 놓도록 합시다.”
정당한 주장을 비폭력으로, 상대에 대한 이해로 풀어나가려고 했던 킹 목사의 이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