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개막하는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에서 닥터 듀블 등 1인 3역의 ‘멀티’ 조역으로 인기몰이에 나서는 배우 김성기. 김재명 기자
“1인3역 능글능글 조연 연기
적격자 없다기에 주연 포기”
“무죄로 해주삼∼.”
‘하삼체’ 유행어를 써먹는 늙은 변호사의 능청스러운 표정과 노래에 관객들은 박장대소했다.
지난해 선보인 프랑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탤런트 박상원과 가수 해이 등 연예인이 주연으로 출연해 관심을 끌었지만 막상 뚜껑이 열린 후 스포트라이트는 ‘멀티’ 조연 김성기(42)에게 모아졌다. 커튼콜 때 가장 큰 박수는 그가 도맡아 받았다. 닥터 듀블, 경찰, 변호사 등 1인 3역을 능글능글하게 소화해 낸 그는 단번에 ‘찰리 채플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7일부터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에 올리는 재공연에서 김 씨는 같은 역으로 다시 나선다. 주인공 ‘듀티율’ 역이 욕심났지만 “누가 ‘듀블’을 맡나? 경찰은? 변호사는?”이라고 보채는 연출의 요청도 있었고 초연 때 보여 준 관객들의 반응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조연인 저에게 그런 뜨거운 환호가 나올 줄은….”
▲ 동영상 촬영 : 유성운 기자
에피소드 하나. “너무 반응이 의외라서 무대 뒤에서 살짝 모니터로 관객들을 보다가 경찰로 나가는 차례에 등장을 못했어요. 다른 한 명이 자전거를 끌고 옆 사이드 석에 타는 건데 빈 수레만 나간 거죠, 하하.”
‘벽을 뚫는 남자’는 어느 날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갖게 된 소심한 공무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김 씨는 특이한 능력 때문에 고민하는 주인공에게 엉뚱하지만 제대로 된 처방을 내려주는 알코올의존증을 보이는 의사, 주인공을 체포하는 ‘오버’ 경찰, 체포된 주인공을 변호하는 변호사 등으로 나온다.
‘벽을 뚫는 남자’에서 인기를 얻은 코믹 연기에 힘입어 그는 지난해 KBS 일일시트콤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에 소심한 라디오 PD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현재는 MBC 인기 사극 ‘태왕사신기’에 출연 중.
한양대 성악과 출신인 그는 오페라 가수로 진출한 동기들과 달리 서울시립가무단과 서울예술단을 거쳐 뮤지컬 배우로 10년 넘게 활동해 왔다. 주로 감칠맛 나는 조연을 맡았지만 2005년 ‘맨 오브 라만차’에서는 주인공 돈키호테로 호평을 받았다.
인기 상종가를 이어 가기 위해 작년 ‘하삼체’에 이어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단다.
“‘무죄로 해주삼∼’을 ‘무죄로 해달라규∼’로 바꿀 생각입니다.” “에, 그게 뭐죠?” “요즘 누리꾼들 사이에 ‘해달라규∼’가 유행어인데 그것도 몰라요? 반응 안 좋으면 다시 ‘해주삼’으로 가고….”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