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7권요….” 지영이는 시선을 내리깔고 기어 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걔, 겨우 7권?” 충남 보령시 청소면 청소초등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왕성한 독서량을 자랑했다. 하루에 2, 3권씩 읽는 아이가 많아 하루 1권은 ‘명함’도 못 내밀 처지. 그 덕분에 충남도교육청에서 주최하는 각종 글짓기 시상식에서 이곳 학생들은 단골 스타다.》
본보와 네이버와 함께 ‘고향 학교에 마을 도서관을’ 캠페인을 벌이는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9일 ‘청소초교 마을도서관’에 2700여 권의 책을 지원했다. 그 많은 책을 보면서 아이들의 셈법은 간단명료했다. “뭐! 3년이면 다 읽겠네.”
이날 기증식에서는 주민과 어린이 글짓기대회가 함께 열렸고 서강대 김미라 교수가 ‘독서가 왜 중요한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공동도서관장을 맡은 김종대(55) 교장과 주민대표 김영례(42) 씨는 이날 주민 314명이 지원을 요청하고 도서관 운영 계획 등을 밝힌 연명서를 김수연 대표에게 전달했다.
○ 청소초교 교사 수는
청소초교의 정식 교사는 모두 9명. 그러나 아이들은 5명을 더한다. 5명의 어머니 사서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이다. 괜한 존칭이 아니다. 어머니 사서들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도서관을 지키며 독서 교육을 맡고 있다. 이들은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계기로 사서를 자임했다.
화 목요일에는 오후 9시까지 야간개관도 한다. 이 중 화요일은 사서들이 정한 책읽기 캠페인 ‘TV off, Book on’을 실행하는 날이다. 청소초교의 독서 열기는 이들이 부채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야관 개관을 맡을 때는 컵라면이나 김밥으로 저녁을 때우기도 한다. 방학 때도 매일 도서관을 운영할 정도로 열정을 쏟고 있다.
어머니 사서들은 “힘들기도 하지만 도서관에 얽힌 추억 때문에 그만둘 생각을 못한다”고 말했다.
‘과학상상화 대회’ 출품작 때문에 고민하는 학생에게 참고서적을 찾아 줘 우수상으로 이끌었던 기쁨, 논술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상장을 들고 달려오는 학생, 할머니와 어렵게 사는 학생이 책을 잃어버리고 발을 동동 구를 때 괜찮다고 달래던 일….
2년 전 사서제를 이끌어 ‘명예관장’으로 불리는 김영례 씨는 “힘들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선생님∼’ 하고 부르며 달려올 때 피곤함이 확 가신다”고 말했다.
‘작은 도서관…’이 마을도서관에 책을 기증하게 된 것도 어머니 사서들의 열정 덕분이었다. 김수연 대표는 “어머니 사서들의 활동상은 이곳이 어느 곳보다 훌륭한 작은 도서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줬다”고 말했다.
○ 작은 도서관의 ‘모범 사례’
청소초교 마을도서관에서는 ‘독서퀴즈대회’ ‘독서골든벨’ ‘북 카페’ ‘방학독서강좌’ ‘TV off, Book on’ 운동 등 독서와 관련해 크고 작은 행사가 1년 내내 열린다.
월 1, 2회 열리는 ‘북 카페’는 주민들과 교사들이 벌이는 독서토론 모임이다. 어머니 사서들이 이 모임을 주도하며 교사들에게 독서 과제도 준다.
전교생(127명)을 대상으로 벌이는 ‘독서퀴즈대회’와 ‘독서골든벨’ 대회는 청소초교의 가장 큰 행사이다. ‘TV off, Book on’ 운동이 벌어지는 화요일에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주민들의 이동 행렬도 흔히 볼 수 있다.
김수연 대표는 “작은 시골 학교에서 이런 특별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 학생들의 독서 수준도 기대 이상”이라며 “작은 도서관 운동의 모범 사례”라고 말했다.
보령=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