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에서 온 남자 난자에서 온 여자/조 쿼크 지음·김경숙 옮김/320쪽·1만2000원·해냄
남성과 여성은 다르다. 해묵었지만 언제나 솔깃한 주제. 심지어 각자 화성과 금성에서 왔다고도 한다. 둘 다 외계인이라는데 맞는 말이란다.
창조론이건 진화론이건 남녀는 분명 지구에서 났다. 그런데 왜 타 행성에서 왔다고 할 정도로 이렇게 다를까. 그간 통설은 사회적 요인이 컸다. 남성으로, 여성으로 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저자는 의견을 추가한다.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진화한 결과”라고.
‘정자에서 온…’은 진화생물학이란 과학적 근거 아래 남녀의 차이를 조망한 책이다. 사실 여기까지 들으면 이 책은 시금털털하다. 그간 얼마나 많은 과학자가 질리도록 설명했던가. 저명한 석학도 아닌 저자의 말이 귀에 꽂힐 리 없다.
하지만 곁다리 과학자 출신임은 저자에겐 엄청난 이점이다. 무게 잡을 필요도, 딱히 걸릴 것도 없다. 진화생물학은 물론 문학과 서양문명 발달사 등을 두루 섭렵한 장기를 살린다. “여성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을 기반으로 남녀관계를 ‘쾌도난마’한다.
저자가 보는 남녀 차이는 단순하다. 남성은 정자를 뿌려대고 싶고, 여성은 난자를 헛되이 쓰길 원치 않는다. 남성은 더 많은 번식 기회를 얻으려 바람피운다. 여성은 더 좋은 유전자 형질을 얻을 기회를 찾아 외도한다. 일부일처제는 숱한 번식 방법 가운데 비교적 인간이 유전자를 보존할 가능성이 높기에 자연 선택된 진화의 산물이다.
동성애에 대한 설익은 편견도 깬다. 이성애만이 자연법칙은 아니었다. 홍학은 수컷끼리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운다. 대부분의 줄무늬돌고래는 양성애를 즐긴다. 고리부리갈매기는 5%가 레즈비언 커플이다. 심지어 동성의 교미만 관찰된 종도 있다. ‘검은엉덩이불꽃등이’라 불리는 딱따구리의 일종이다.
‘정자에서 온…’은 젠체하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쓰는 것이 과학의 진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남성이 무엇을 하든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여성 때문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터득한 사람이다.” 그럼 우리도 한 꺼풀 벗어 보자. 그 남자의 두꺼운 지갑, 그 여자의 두꺼운 화장. 자기만족이라고? 그 두꺼움, 다 유전자에 새겨진 거 아닌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