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름진 삶을 한순간에 초토화했던 모든 전쟁이 그러했듯이 이번의 동물전쟁도 사소한 동기에서 출발했습니다. 강가에 있던 자신의 처소를 인간의 무자비한 개발로 잃어버린 너구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졸지에 안식처를 잃고 방랑자가 된 너구리는 인가에 있는 쓰레기통이나 뒤지며 목숨을 지탱하는 남루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몸을 숨기고 있던 주인은 쓰레기통으로 접근하는 너구리를 야구방망이로 때려잡아 버렸습니다. 그날 밤 길 건너편 느티나무 위에 앉아 있었던 올빼미가 이 불행한 사건의 전말을 목격하고 즉각 까마귀 떼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격분한 까마귀 떼는 득달같이 사방으로 흩어져 야만적인 살육을 동물세계에 전파했습니다.
지구촌은 그로써 눈 깜작할 사이에 전쟁의 와중에 휩싸여 버렸습니다. 그동안 동물세계가 수천 년 동안 감내해 왔던 치욕을 씻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큰 고릴라서부터 작은 말똥구리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어느 동물도 인간과의 전쟁을 사양하지 않았습니다. 들불과 같이 일어난 동물은 제각기 가진 특질에 따라 전투부대를 조직했습니다.
인간의 멱을 물어 숨통 끊어 놓기 부대에는 치타가 배치됐습니다. 지하통로 확보 부대에는 미어캣과 두더지가 배속됐습니다. 인간 부대의 배치 상황과 진지의 위치 확인은 긴꼬리원숭이와 왜가리의 몫이 됐습니다. 인간 물어뜯기에는 개미와 모기, 보급품 수송에는 낙타, 인간이 만든 진지 파괴에는 멧돼지 부대, 최전선의 보병 부대로는 코끼리와 고릴라와 악어와 사자가 배치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반격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에게도 가공할 무기는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미사일과 같은 무기입니다. 그러나 동물과의 전쟁은 지구촌 전체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져서 전선이 따로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우유창고를 지키는 양 떼나 모기 떼나 파리 떼를 겨냥하고 미사일을 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전쟁 발발 1주일 만에 지구촌 인간은 전멸되고 말았습니다. 마침 우주 공간에 체류하던 러시아의 우주인 6명과 히말라야 등정에 나섰던 한국 등반대 13명이 동물전쟁에서 살아남은 인간의 전부였습니다. 나머지 인간의 흔적은 진열장 위에 놓인 사진틀 속에서나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제 지구의 주인이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작가 김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