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한때 제조업에서 일본에 밀렸던 미국은 정보기술과 금융업으로 경제 중심축을 회복했다. 우리처럼 외환위기를 겪었던 영국은 1986년 금융 빅뱅으로 재기(再起)에 성공했다. 미국 스위스 호주 싱가포르 홍콩 등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금융이 강하다. 1인당 국민소득 6만 달러인 룩셈부르크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금융산업 비중이 25%로 한국(7.5%·작년 기준)의 세 배를 넘는다.
▷제조업 위주로 성장한 우리는 금융업을 후방산업이나 내수산업, 투기산업으로 보는 시선이 남아 있다. 세계 경제는 이미 금융이 주도권을 쥔 ‘신자본주의(New Capitalism)’ 시대다. 세계 GDP 대비 금융자산 비중은 1980년 109%에서 2005년 316%로 껑충 뛰었다. 자산 규모가 급증하고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개인들의 자금 운용 패러다임이 예금에서 투자로 바뀌었다. 금융업의 중심은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통한 직접금융으로 옮겨 가고 있다.
▷한국은 짧은 역사 속에서도 주식형 펀드가 9265개(미국 펀드평가사 모닝스타코리아와 자산운용협회의 11월 9일 추계)로 세계 1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내실은 빈약하다. 펀드 설정액과 운용수익을 합친 순자산 규모가 10억 달러(약 9156억 원) 이상인 펀드는 전 세계 총 1798개 중 30여 개(1.7%)에 불과하다. 미국(57.4%) 유럽(12.1%)에 비해 보잘것없고 캐나다(8.3%) 중국(2.7%) 호주(2.6%)보다도 뒤진다.
▷금융업은 굴뚝 없는 수출산업이다. 스위스의 UBS, 영국의 HSBC 같은 금융회사의 해외수익 비중은 70%가 넘는다. 자산 규모 세계 20대 기업도 모두 금융기업이다. 과거 한국의 수출 역군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제품을 팔았듯 이제는 자본을 팔아야 하는 시대다. 국내 회사들끼리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서로를 깎아내리는 ‘변방 의식’으로는 진정한 금융 허브가 될 수 없다. 미래에셋의 특정 펀드에 돈이 몰린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도 우물 안 발상이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