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검찰은 대선 주자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배당했다. 그러면서 이례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가려 국민이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사법적극주의(judicial activism·정치적 목표나 사회정의 실현 등을 염두에 둔 적극적 법해석 및 판결)의 검찰 버전인 검찰적극론이었던 셈이다.
‘국민의 정확한 선택’이란 말은 ‘찍을 후보에 관한 바른 선택’을 의미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유권자가 몇몇 의혹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를 절대적 잣대로 삼아 대통령을 고를 것으로는 상상되지 않는다. 5년간 무얼 할 수 있는 인물인지를 따질 것이다. 더구나 2002년 충동구매의 학습효과도 만만찮다.
설혹 어떤 의혹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대통령 선택의 결정적 기준이 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검찰 수사 결과가 법률과 증거에 충실했더라도 그것이 곧 유무죄의 최종 결론은 아니다. 법원이 검찰의 기소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검찰의 판단에 결정적으로 영향 받아 투표한 국민은 정확한 선택을 한 것인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인가. 아무튼 국민에게 대통령 재선택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그제 김경준(41·전 BBK 투자자문 대표) 씨를 주가 조작, 횡령, 사문서 위조 혐의로 구속했다.
5년 전 피해자 昌의 二律背反
바로 그날 ‘김경준 주가조작 피해자 대책위’는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사건은 국제금융 사기꾼 가족이 주가 조작으로 투자자 5252명에게 피해를 입힌 경제사기사건입니다. 정치권은 이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검찰은 피해자들의 금전적 회복을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호소와는 상관없이 이 사건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관련 여부를 둘러싼 첨예한 정치사건이 돼있다. 5년 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악몽 속으로 몰아넣었던 아들 병역비리 및 부인 금품수수 의혹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2002년 10월 검찰은 이회창 후보 장남의 병적기록표 위·변조 여부,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개최 여부, 후보 부인의 10억 원 수수 의혹에 대해 모두 ‘증거 없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의혹의 그림자는 투표소에까지 드리웠다. 이 후보 측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만으로도 지지율이 급락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사건은 결국 이회창 후보가 낙선한 뒤 김대업 씨 등 의혹 제기자들이 명예훼손죄 선고를 받고서야 일단락됐다. 물론 ‘노무현 당선, 이회창 낙선’이라는 결과는 바뀔 턱이 없었다. 당선자 측이 미안해할 사람들도 아니었다.
김경준 씨 사건도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로 잠잠해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 후보에 대해 ‘무혐의’ 또는 ‘증거가 없다’는 발표가 나오면 범여권 측은 순순히 정치공세를 중단할까. 이회창 씨는 국민 지지도가 훨씬 높은 이명박 후보를 돕겠다며 11월 7일의 공언대로 ‘살신성인’할까. 오히려 검찰 발표가 공방 확산의 빌미가 될 수 있다. 검찰이 이 후보에게 불리하거나 유보적인 발표를 해도 공수(攻守) 진영만 다를 뿐 양상은 비슷할 것이다.
이회창 씨는 5년 전 흑색선전의 피해자다. 그런 이 씨 측이 쓰라렸던 경험을 엉뚱하게도 이명박 후보에게 되갚으려 한다. 김 씨 송환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짜고짜 이명박 사퇴론까지 들고 나왔다. 법정신(法精神)과 이성(理性), 그리고 보수 분열에 대한 죄책감은 실종되고 오로지 경쟁자를 죽여야 내가 먹는다는 정글의 법칙만 작동하는 형국이다.
자기 브랜드 없이는 승산 없다
약체 후보들은 유권자들이 검찰 수사만 쳐다보기를 바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이 쾌도난마로 결판날 가능성은 적다. 어차피 선거전략과 정략(政略)으로 덧칠된 사건이다. 그러니 다른 후보들이 이명박을 꺾겠다면 김 씨와 검찰의 입만 움직이려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자신만의 브랜드이미지를 창출하는 게 현명하다. 이명박 후보가 경선 때부터 당 안팎의 집중적인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리고, 이회창 씨의 출마까지 겹쳤음에도 큰 격차로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역시 ‘경제의 이명박’이라는 브랜드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경쟁자들도 각자의 브랜드가치를 키워야 승산이 생긴다. 시간도 얼마 없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