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21일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며칠 후인 12월 3일 양측은 협상에 타결해 서명했다.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우리 경제가 IMF 관리체제에 편입되면서 건국 이후 처음으로 경제주권을 상실하는 사태를 맞았다. 빚을 갚지 못한 대기업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당시 30대 대기업 중 17개가 공중 분해됐다. 33개 은행 중 17개만 남아 있다. 한동안 매일 1만 명의 실업자가 새로 생겨났고 자살자가 속출했다.
이처럼 격렬한 구조조정을 거치긴 했지만 한국은 외환위기의 직접적 충격에서는 빨리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0년 동안 1인당 소득은 갑절인 2만 달러로 늘었고, 주가지수 2,000 시대가 열렸다. 양적 성장 못지않게 질적 성과도 크다. 부실 기업이 정리되고 재무구조가 건전해졌으며 수익성 위주의 경영이 정착됐다. 방만한 차입경영, 분식회계, 부패, 선단(船團)식 경영, 총수 전횡 같은 낡은 행태도 상당히 개선됐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공공 금융 기업 노동 4대 개혁과제를 제시했지만 미진한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고 새로운 불안 요인도 적지 않다. 금융 후진성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전투적 노사관계도 여전하다. 공공 부문의 비효율과 규제는 오히려 후퇴한 느낌이다. 고용불안과 청년실업은 일상사가 됐다. 중산층이 얇아지는 대신 빈부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국가채무 급증으로 재정건전성이 떨어졌으며 가계 빚도 크게 늘었다. 위기 요인이 다시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의 10년을 마치고 새로운 10년을 열자면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와 활력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다. 투자 부진에 따른 자본축적 감소, 노동생산성 증가세 둔화로 사그라지는 성장 동력을 되살리는 일이 시급하다. 외환위기 직후처럼 비상한 각오로 생산성 향상과 규제 개혁에 나서야만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선택 기준은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는 새로운 리더십이 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과 건강한 중산층 의식을 복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