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사상 최초로 세계 평화를 위협한 범죄를 재판하게 된 것에 엄중한 책임을 느낀다.”
재판의 수석검사를 맡은 로버트 잭슨 미국 대법원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 전범(戰犯)에게 전쟁의 책임을 묻는 최초의 군사재판은 1945년 11월 20일 그렇게 시작됐다.
히틀러의 후계자 헤르만 괴링, 나치 국무장관을 지냈고 히틀러가 구술한 ‘나의 투쟁’을 받아 쓴 루돌프 헤스, 나치 외교 정책을 담당한 요하힘 폰 리벤트로프. 이들을 포함해 나치 고위 관료 24명이 평화에 반한 죄, 인도(人道)에 반한 죄, 전쟁을 일으킨 죄, 침략전쟁을 모의한 죄로 전범 재판에 기소됐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재판은 사망자만 5000만 명에 이른 이 참혹한 전쟁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고 사법적으로 단죄했다. 12명이 사형, 3명은 종신형, 4명이 징역형이었고 1명은 자살, 1명은 병으로 판결 연기, 4명은 무죄였다. 리벤트로프는 교수대에 오르며 “세계 평화를 빈다”고 말했다. 괴링은 처형 직전 청산가리를 삼켜 자살했다. “200만 명 넘는 젊은이가 아버지 나라를 위해 죽었다! 이제 아들들을 뒤따른다!”고 말한 자도 있었고 “하일 히틀러!”를 외친 자도 있었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무엇일까. 전쟁의 책임을 개인의 죄로 돌려 법으로 심판할 수 있을까.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로 도망쳤다가 붙잡혀 이스라엘 법정에 선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 유대인 대량학살의 책임자인 그는 법정에서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 유대인 학살에 책임이 없다”고 항변했다. 거대한 체제의 톱니바퀴로 명령을 이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이히만처럼 나치 전범 대부분은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사상가 해나 아렌트(1906∼1975)는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한 뒤 ‘악의 평범성’을 얘기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 대답했다. 아렌트에 따르면 국가의 영광과 충성으로 세뇌당한 평범한 사람 누구나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 같은 재판이, 사법적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다른 동시대인에게는 과거에 대한 뼈아픈 기억과 성찰을 잊게 하는 것은 아닐까. ‘대중독재’ 연구에 천착해 온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침묵함으로써 전쟁과 학살에 공모했던 독일인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과거에 대한 책임 있는 기억을 재구성해 보존하는 것이 사법적 심판보다 중요하며 역사에 대한 사법적 심판으로 사회적 기억을 망각시켜선 안 된다는 의미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