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2030년의 가상 상황을 소개한 것이다. 지금보다 생활이 윤택해져 또 하나의 집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전제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나의 집이 있는 상황에서 두 번째로 마련하는 집이기 때문에 그 아파트는 좀 더 자유롭고 낭만적이다. 주방 거실 침실 등과 같은 기존의 구성 방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집이다. 그래서 이 글은 2030년에 찾아올 새로운 개념의 아파트에 대한 하나의 제안이자 지금의 아파트에 대한 풍자다. 사람의 심리와 주거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2030년, 주택보급률이 120%에 이르자 건설 경기가 크게 위축됐다. 건설 불경기 타개 방법을 모색하던 정부는 주택을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소비를 촉진해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상상주택공사’에서는 ‘나의 두 번째 아파트’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파트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첫 사업으로 세 가지 유형의 아파트를 공개했다.
기존 아파트는 욕망의 평균에 기반을 둔 집인 동시에 하나의 제도이자 억압 장치다. 획일적 생활 방식과 사회적 틀에 맞추어 살아온 사람들은 억압된 욕망을 해소할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원한다. 그에 부응해 ‘나의 두 번째 아파트’는 그 억압된 욕망이 해소되는 장소이자 새로운 욕망을 생산하는 기계이며 심리적 치유 공간이다.
○ 제1 유형-고요한 사색
요가에 심취한 H 씨는 고요한 사색의 공간을 원한다. 사색의 공간과 적당히 걸을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는 아파트 유형이 마음에 들었다. 모서리가 없는 공간 구조와 방음 시스템, 그리고 각각의 아파트 가구 단위(유닛·unit) 사이의 여백도 좋았다. ‘도구적 이성’의 시대를 연 데카르트의 직교 좌표 체제와 달리 윤회의 사이클을 그리며 만들어진 동선 체계, 개별 가구 단위를 부드럽게 쌓아올린 적층(積層) 방식도 H 씨의 철학과 일치했다. 그는 ‘초자아(super-ego)’의 완성을 통해 삶이 구원받는다는 믿음을 가졌기에 이 아파트를 매입하기로 마음먹었다.
○ 제2 유형-금요일 밤의 파티
파티를 좋아하는 D 씨는 유닛 12개를 친구들과 공동으로 구입했다. 이 아파트는 유닛마다 파티를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각 유닛의 창과 발코니는 파티의 공간을 향해 있고 창과 발코니는 파티 참여 의사에 따라 열 수도 있고 막을 수도 있다. D 씨에게 파티를 위한 공간은 ‘자아(ego)’가 경계를 넓히고 소통하는 장소이자 축제가 펼쳐지는 제의적(祭儀的) 공간이다.
○ 제3 유형-비밀의 화원
빨간 하이힐을 수집하는 J 씨는 그동안 이 취미를 숨겨 왔다. 자신을 감추고 싶은 욕망(id)을 지닌 그는 프라이버시가 완벽히 보장되는 아파트를 원했다. 드디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파트가 나타났다.
자동차 문을 열면 아파트로 바로 이어지며, 내부 공간은 거주자의 기호에 따라 새롭게 구성되는 그런 아파트. 주차 엘리베이터와 연결되는 개인 주차장에서 연결 통로인 브리지(bridge)를 건너면 그의 아파트로 이어진다. 저층 상가와 공유하는 주차장 입구로부터 아파트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은 완전히 배제된다. 이 아파트는 비밀스러운 욕망의 화원인 셈이다.
○ 추신(postscript)
서울 종로구에 사는 S 씨는 ‘상상주택공사’에 새 아파트의 위치를 문의했다. 상담원이 가르쳐 준 곳은 www.sangsang.apt였다. 실제의 위치와 주소를 알고 싶다는 S 씨의 질문에 상담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동안 아파트를 너무 많이 지었잖아요. 아파트를 건축할 땅도 자원도 더는 없다니까요. 상상주택공사에서 인터넷을 통해 저렴하게 제공하는 3차원 입체 블로그가 ‘당신의 두 번째 아파트’라고요.”
김승회 건축가·서울대 교수
:필자 약력:
△서울대 건축과 및 대학원 건축과 졸업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 졸업 △건축사사무소 ‘경영위치’ 운영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 △한국건축가협회상, 서울시 건축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이원환경건축대상 수상 △설계 작품: 이우학교(경기), 문학동네(경기), 세계장신구박물관(서울), 과천주택(경기), 이화외고 비전관(서울), 영동교회(서울) 등
※ 본보에 소개된 아파트 설계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필자 명단:
① 서현 (한양대 교수) ② 장윤규 (국민대 교수) ③ 정욱주 (서울대 교수) ④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 ⑤ 장순각 (한양대 교수) ⑥ 김승회 (서울대 교수) ⑦ 김광수 (이화여대 교수) ⑧ 최욱 (스튜디오 ONE O ONE 대표) ⑨ 신혜원 (lokaldesign 대표) ⑩ 최문규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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